Day 5
물 문제가 해결되자, 잠시 잊고 있던 또 다른 생명의 본능이 포효하듯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허기. 위장이 텅 빈 채 서로를 쥐어짜는 고통스러운 감각. 마지막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혀로 핥아먹으며, 그녀는 벽면의 축축하고 서늘한 이끼를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그저 풍경의 일부였던 녹색의 군락이, 이제는 절박한 시선 속에서 유일한 식량 후보로 보였다. 저것이 그녀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단백질과 섬유질의 보고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독초일까.
그녀는 태블릿을 켰다.
[그녀] 이끼 식용 가능성 확인 방법. 가장 안전한 방법.
화면 가득히 AI의 답변이 떠올랐다. 단순한 ‘예/아니오’가 아니었다. 경고와 절차, 그리고 과학적 원리가 혼합된 냉정한 가이드였다.
[AI] 경고: 대부분의 이끼는 인체에 무해하나, 일부 종은 알칼로이드계 독성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전문 장비 없이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비상 상황 시 ‘보편적 식용성 테스트(Universal Edibility Test)’를 아래의 5단계에 따라 엄격하게 실행할 것을 권장합니다. 각 단계에서 이상 반응 발생 시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AI는 다섯 단계의 테스트 프로토콜을 화면에 띄웠다. 피부 접촉 테스트, 구강 접촉 테스트, 씹기 테스트, 그리고 가장 위험한 소량 섭취 후 관찰 단계까지. 이것은 단순한 식사 준비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목숨을 건 임상시험이었다. 그녀는 이끼의 녹말 성분 함량을 확인할 수 있는 ‘요오드 반응 테스트’ 3에 대한 설명도 읽었지만, 요오드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신의 생체 반응을 직접 테스트하는 것 뿐이었다.
그녀는 가장 연하고 깨끗해 보이는 이끼를 신중하게 골랐다. 마치 복잡한 실험 프로토콜을 따르는 연구원처럼, 그녀는 한 단계 한 단계 AI의 가이드를 따랐다.
첫 번째, 피부 접촉 테스트. 그녀는 이끼 소량을 으깨어 팔 안쪽의 연한 피부에 문질렀다. 그리고 시계의 초침을 보며 15분을 기다렸다. 심장이 조급하게 뛰었지만, 그녀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15분 후, 피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발진도, 가려움도 없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두 번째, 구강 접촉 테스트. 그녀는 다시 이끼를 조금 떼어 입술과 혀끝에 조심스럽게 대보았다. 따가움이나 마비감 같은 불쾌한 자극은 없었다. 쌉쌀한 흙냄새와 물비린내가 전부였다. 두 번째 관문도 통과.
세 번째, 씹기 테스트. 이제부터는 위험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녀는 손톱만큼 작은 양을 떼어 입에 넣고, 침과 섞이도록 아주 천천히 씹었다. 15분 동안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은 채, 혀와 목구멍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씹은 이끼를 삼켰다. 이제부터 8시간의 기다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보내는 아주 미세한 신호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위장의 작은 경련, 미세한 현기증. 모든 것이 독의 신호일 수 있다는 공포가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맥박과 호흡을 체크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8시간이 지나도 몸에는 아무런 이상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한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줌 정도의 이끼를 섭취했다. 완벽한 식량은 아니었다. 칼로리는 미미했고, 맛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이 지하 세계에서 스스로 찾아낸 첫 번째 유기물 에너지원이었다. 그녀는 이끼가 단순한 생존의 재료가 아니라, 이 절망적인 공간과 자신을 연결하는 생명의 끈처럼 느껴졌다.
나아가, 그녀는 더 적극적인 식량 확보에 나섰다. 이 축축하고 서늘한 환경은 이끼뿐 아니라 균류가 자라기에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AI는 썩은 나무나 유기물이 풍부한 흙에서 버섯 균사를 채취하고,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며 배양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안내했다.
그녀는 낡은 컴퓨터 케이스를 화분 삼아 부식된 나뭇조각과 축축한 흙을 채웠다. 그리고 이끼 주변의 흙에서 발견한 솜털 같은 하얀 균사체를 조심스럽게 옮겨 심었다. 그녀는 매일 정화된 물을 분무기처럼 뿌려주며 자신의 작은 농장을 돌보았다. 싹이 틀지, 아니면 이대로 썩어버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희망을 심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무너진 정신을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했다.
Day 10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이 갖춰졌다. 물, 식량, 그리고 희미한 빛. 이제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엔지니어의 본능이 포효하며 깨어날 차례였다. 그녀는 더 이상 수동적인 생존자가 아니었다. 이 지하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환경을 지배하는 창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힘을 증폭시킬 도구였다.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를 옮기고, 단단한 물체를 부수기 위해 그녀는 가장 굵고 긴 철근을 골랐다. 지렛대. 아르키메데스가 세상을 움직이겠다던 바로 그 기계. AI는 화면에 받침점의 위치에 따라 힘이 어떻게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는지에 대한 물리 공식을 띄워주었다.
힘 × 힘팔 길이 = 저항 × 저항팔 길이.
그녀는 여러 크기의 콘크리트 조각을 받침점으로 삼아 실험을 시작했다. 5 받침점이 작용점에 너무 가까우면 큰 힘을 낼 수 있었지만 움직이는 거리가 짧았다. 너무 멀면 힘의 이득이 적었다. 그녀는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최적의 효율점을 찾아냈다. 단순한 철근과 돌멩이의 조합이었지만, 이 원시적인 기계는 그녀의 연약한 완력을 몇 배로 증폭시켜 주는 경이로운 발명품이었다.
다음 목표는 문명의 핏줄, 구리선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찌그러진 전자레인지에 꽂혔다. 또 다시 저주파 소음이 울리는 듯 했고, 전자레인지 안에 있는 마그네트론, 음식을 데우는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이 장치에 고순도의 구리선이 촘촘하게 감겨 있는 것이 투영되었다. 기억이 아닌, 지식이었다. 뇌의 어느 서랍에서 꺼내 든 설계도처럼 한 점의 의심도 들지 않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마그네트론을 분해하자, 영롱한 붉은빛을 띤 구리선 코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엉키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몇 시간에 걸쳐 선을 풀어냈다. 수십 미터의 귀한 자원. 이 구리선은 훗날 통신 안테나가 되고, 등반 로프가 되고, 전력선이 될 터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빛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빛은 질서이자 희망이었다. 그녀는 부서진 TV 브라운관 내부를 다시 살폈다. 화면 안쪽에 얇게 발라진 희미한 백색 가루 형광체. 전자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물질인 이 가루를 조심스럽게 긁어모아 끈적한 식물 수액과 섞었다. 그리고 이 원시적인 야광 물질로 벽면에 방향과 주요 지점, 위험 구역을 표시했다.
낮 동안 희미한 빛을 배불리 머금었던 형광체는, 밤이 되자 신비로운 녹색 빛을 은은하게 내뿜었다. 그녀의 지하 기지는 더 이상 완전한 암흑이 아니었다. 비록 희미했지만, 그 빛은 그녀가 만든 질서이자,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열흘 째 되던 날, 그녀는 자신의 왕국을 둘러보았다. 시간 맞춰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정수 시스템, 최악의 상황을 막아 줄 이끼와 버섯 농장, 힘을 증폭시키는 지렛대와 미래를 위한 구리선, 어둠을 밝히는 야광 표시까지. 분해된 전자기기에서 얻은 알루미늄 호일을 벽에 붙여 만든 열 반사판은 동굴의 온도를 미세하게 나마 유지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생존했다. 이제는 탈출을 설계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