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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Aug 01. 2023

존재

삶에 대한 애착 또는 집착

오늘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산다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0.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지금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사는 것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계단을 내려가는 나 자신이 삶 그 자체다. 왜냐하면 삶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우연히 발견한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이 최근 내게 심어 놓은 생각이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최근 내게 산다는 것은 버거운 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고통스러운 자아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그래서 절망한, 한마디로 실연당한 자아는 나를 매순간 괴롭혔다. 출근길, 직장, 잠시 들리는 화장실, 퇴근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고통받는 자아는 내 입안까지 침투해서 24시간 나를 괴롭혔다. 잇몸이 모두 뒤집힌 것이다.


잇몸 이 퉁퉁 부운 채로, 오랜만에 외출에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비틀 걷다가, 나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지난주 아빠 생일로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났다. 고통은 사라지고 행복함을 느꼈다. 삶의 방향, 화살표에 초점을 맞추고 되돌아보면 지난한 기억들 뿐이다. 가족들과 살아온 여정도 마찬가지다. 태어나기 전까지 존재하길 원치 않았고, 갑자기 나를 존재하게 한 그들이 원망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들이 사라지길 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를 존재하게 만든 이들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며, 존재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존재 자체가 행복이라면 내 삶의 화살표가 향할 방향은 분명하다. 나는 존재를 위해 살아야 한다. 내 길고도 지루한 화살표들을 자르고 잘라서 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점들을 남겨놔야 한다. 내가 존재했음을 새겨놔야 한다. 나를 쪼개고, 가르고, 말려서 그 가루를 동굴에 벽화로 그려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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