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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Nov 23. 2023

무제

불안

며칠 전부터 불안이 널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가슴 부위부터 시작된 소용돌이가 팔을 넘어 손까지 덮쳐온다. 내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난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던 통제권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게 내 세상은 무너진다. 무너졌다.


내 세상이 무너지면 외부의 모든 것은 위협이 된다. 외부 사람의 몸짓, 음성,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내 신경이 초록 칠판이라면 모든 외부 자극은 내 신경을 긁는 손톱이다. 이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솟구쳐 오르는 공격성 또는 폭력성을 잠재워야 한다. 주먹을 꽉 쥐고.


의사는 이런 내 증상을 '예민'이란 표현으로 정의했다.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상태가 한 단어 정리되니 안심이 됐다. 최근 이직으로 긴장도가 높아졌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까지 걸려 몸이 아팠다. 그 결과로 기력이 약해지면서, 나는 아주 우연히 예민해진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자고 체력을 회복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이를 때쯤 의사가 신경안정제를 처방하겠다고 말했다. 더욱 안심이 됐다.


어젯밤 평소 먹던 항우울제와 수면제에 신경안정제도 먹었다. 오전 5시 40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밤 11시 40분쯤에 잤다. 최근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잔 탓에 병이 났다고 생각해서 10시에 자려고 했지만 침대에 눕기만 하면 불안이 온몸을 휘어감아 매번 12시는 넘어야 겨우 잠들었는데, 어제는 시작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어떤 꿈을 꾸다가 불안감에 눈이 확 떠졌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해 보니 3시 40분이었다. 또, 또, 4시간만에 눈을 뜬 것이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빨래를 돌렸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 허기 때문인가 싶어 냉동 고구마를 돌려먹었다. 배가 채워졌는데도 4시 반까지 잠이 오지 않아 전략을 바꿨다. 물을 끓여 따뜻한 더치 커피를 마셨다.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5시 10분쯤에 30분만이라도 눈을 감고 있자고 생각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불안감은 전기 고문과 닮았다. 나는 고통에 (말그대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6시 30분이었다. 최소한 6시 50분에는 출발해야 지각하지 않는데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10분만에 급히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었다. 6시 45분이었는데 세탁해 놓은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빨랫감이 많지 않아 2분만에 말리고 6시 47분에 출발할 수 있었다. 겨우 늦지 않을 시간대의 지하철에 올라타고서야 안심을 했다. 그때부터였다. 급한 사이 느끼지 못한 불안감이 덫처럼 온몸을 옥죄어 왔다.


불안감 그 다음은 무력감이다. 무력감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감각이다. 더 나아가서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고독감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 여력도 없었다. 지하철 통 유리창 너머로 내 얼굴이 보였다.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가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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