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책방알바 Oct 23. 2021

뜻밖의 손님

댕그랑, 책방 문에 달린 풍경이 울렸다.

나는 정리하던 책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오후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입구 통로에 검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망토를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내가 뭘 시켰던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책방에 있는 손님이 뭘 시켰나. 전에도 한번 그런 적이 있었지. 그러나 책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책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보고 싱긋이 웃었다. 오토바이 헬멧이 다스 베이더 헬멧이었다. 헬멧부터 장화까지 완벽하게 다스 베이더 복장이었다. 허리에는 광선검 손잡이도 매달려 있었다. 광선검은 달라고 해서 카운터에 보관했다가 나갈 때 돌려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오셨어요?”

“책을 사러 왔습니다.”

“아...” 나는 최대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음, 책을 보시려면 일단 장갑을 벗고 손 소독을 해주시고...”

그는 순순히 두꺼운 검은 장갑을 벗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손 소독을 했다.

“혹시 큐알 체크 가능하세요?”

“그럼요, 가능해요.”

그는 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서 흔들더니 큐알 체크를 했다.

“와우, 그건 어디 거예요?”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우리는 다 갤럭시를 쓰지요.”

헬멧의 표정이 그것도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혹시 헬멧을 벗으실 거면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아, 저는 헬멧을 벗지 않을 거고요, 이 헬멧은 비말 차단이 됩니다. 걱정 마세요.”

“아, 예. 그럼 천천히 보세요.”

그는 여기저기 서가를 둘러보았고, 나는 컴퓨터를 만지거나 책을 보는 척 하면서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스타워즈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하긴 다스 베이더가 인기가 많긴 하지. 나도 저런 헬멧 하나 있으면 좋겠다. 선글라스 기능도 있고 마이크 기능도 있고 공기 정화 기능도 있고 비말 차단도 되고 외국어 통역도 가능하고. 분명히 그런 기능을 사용해서 한국어로 말하는 걸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두 손으로 카운터를 쳤다. 쿵. 나는 어깨를 으슥하고 움찔했다. 동화책 서가에서 책을 읽던 다스 베이더가 나를 쳐다보더니 잠시 후 헬멧을 다시 책으로 돌렸다.

이거 혹시 몰래 카메라 아니야? 나는 카운터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방송국 차량도 카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 입구 전봇대 위에는 까마귀가 까까 외치고 있었고 길가에는 검은 마스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서 바닥에 떨어진 마스크를 주워서 책방 안으로 들어가 마스크를 휴지통에 버렸다. 마스크를 버리고 몸을 돌렸더니 바로 앞에 다스 베이더가 서 있었다. 나는 상체를 뒤로 조금 젖혔다. 다스 베이더는 책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다.

“혹시 좋아하시는 분야나 관심을 가지시는 분야가 있나요?”

다스 베이더는 고개를 돌려서 카운터 오른쪽 서가를 보았다. 거기는 과학, 인문, 종교 서가였다. 천문학책을 추천할까, 이런 복장을 하고 다니는 걸 보니 우주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패션? 다스 베이더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았다.

“실은...제가 아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 예...그러시군요.” 나는 손을 턱에 대고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그를 데리고 가족, 교육, 청소년 분야 서가로 갔다.

“아드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다 컸습니다. 장가 갈 나이가 넘었는데 아직 미혼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드님이랑 어떻게 사이가 안 좋은 건지 물어도 될까요? 최근에 크게 다투신 건가요?”

“아니요. 제가 직업 군인인데 일하느라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아들이 고아처럼 자랐어요. 어머니도 없이 친척 손에 컸죠. 다 자란 뒤에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됐어요. 제가 실수로 아들 손목도 하나 잘라버리고...”

“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허리에 있는 광선검을 쳐다보았다.

“아, 이건 후추 스프레이입니다. 한국은 무기 반입이 금지돼서 가지고 오지 못했어요. 아무튼 아들이 손을 하나 잃는 바람에 공군 파일럿도 그만두게 됐고...여러모로 나를 많이 원망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자 관계 회복보다 분노 조절하는 법을 추천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서가를 천천히 보다가 다스 베이더에게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추천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좋은 아빠들이 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책을 한번 보시죠.”

책을 받아든 다스 베이더의 손을 보니 주름이 많았다. “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 이리로 오시죠. 계산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책방 도장이 있는데 방문 기념으로 책에 찍어드릴까요?”

“예, 찍어주세요. 그리고 이건 뭔가요?”

“아, 그건 책방 회원에게 드리는 뱃지입니다.”

“별이 빛나는 표시인가요?”

“윤슬이라고 바다가 반짝이는 표시인데 빛나는 건 똑같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회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죠?”

“예, 여기 쪽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사시는 곳 도시 이름만 쓰시면 됩니다. 그러면 구매 금액의 오 퍼센트를 적립해드리고 오만 점이 되면 아드님과 책방에서 하루 주무실 수도 있습니다. 책방에 행사가 있으면 문자로 알려드리고요.”

“예, 여기 있습니다.”

“오늘 사신 책도 같이 적립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책방에서 만든 동네 지도인데 동네 구경을 한번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동네에 맛있는 식당과 카페가 많아요.”

다스 베이더는 뱃지를 하나 들고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한 뒤 책방을 떠났다. 나는 그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창문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다스 베이더가 어디로 가는지 보았다. 다스 베이더는 동네 지도를 펼쳐서 가만히 보고 있었다. 망토가 살짝 펄럭였다. 검은 망토는 서서히 멀어지고 전봇대의 까마귀는 같은 제복을 입는 사람에게 외쳤다. (어디 갑니)까!

나는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면서 카운터로 가서 고객 등록을 하려고 다스 베이더가 쓴 쪽지를 보았다. 이름만 쓰고 전화번호와 주소는 쓰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에 다스 베이더의 이름을 입력했다. 우주인. 맙소사, 다음에 보면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