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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an 07. 2019

기나긴 밤의 나라로
가는 길의 다섯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평행선을 달린다

1. 쓸데없는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싶다. 머릿속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내 감정을 모아 밖에 널어놓고 싶다. 그러면 맑고 건조한 날 말린 수건처럼 내 마음도 가볍고 경쾌해질 수 있을까? 세제나 섬유 유연제 없이는 어려운 일일까? 물론 그전에 부끄러움이 쏟아져서 비 오는 날 빨래처럼 걷어버리겠지만.

2. 일상을 감당할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난다. 억겁 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당초 그 정도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이 순간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겠지만,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평행선을 달린다. 고요한 밤, 마음의 미세한 떨림이 머리 안으로 들려온다.

3. 휴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기나긴 밤의 나라로 간다. 어둠 속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일렁인다. 모든 게 한바탕 꿈같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일상에 치여 살다가 다시 꿈꾸는 그 날을 생각한다. 그 언제도 그랬다. 그 언제도 그랬고. 양 옆으로 굉음이 울리고 날개가 덜거덕거린다. 현실에 내려앉을 시간이다.

4. 이번 비행은 유난히 길다. 두고 나온 미련이 눈 앞에, 손 끝에 걸려서 자꾸 돌아보라고 보챈다. 이렇게 질척대는 이유는 서울이 너무 좋았던 탓이다. 다음 휴가는 조금 지루하거나 너무 좋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기 쉽도록. 떠나는 길이 짧도록. 떠나는 마음이 설레도록. 아니면 아예 돌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확 잡아버리던가.

5. 오랜만에 만난 이전 회사 부장님이 말했다. 인생은 그 사람만의 물길이 있다고. 너는 너만의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난 언제까지 이렇게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굽이진 길을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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