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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09. 2021

어찌할 수 없는 마음

볼빨간사춘기'나의 사춘기에게' 노래 가사를 생각하며

볼빨간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라는 노래를 들으면 청소년들이 직접 부딪히며 겪어냈을 사춘기 시절의 솔직한 감정을 대리 체험해 보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앵두도 가장 힘든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로 시작하는 노래 첫 구절은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로 이어진다. 담담히 읊조리듯 시작하는 이 가사는 아이들이 존재에 대해 느끼는 깊은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나에 대한 자의식은 비대하게 커져서 생얼로 편의점 가는 것도 창피하다고 느끼게 됐는데, 실제로 세상이 판단하는 기준에 나는 맞지 않은 것 같고, 내가 원하는 내 모습도 이게 아닌 것만 같다. 내 존재를 나조차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타인의 시선이란 감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요즘처럼 SNS에서까지 자신을 드러내고 평가받는 시대에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선에 둘러싸여 존재를 수시로 증명해야 하는 불안에 시달릴까 상상해보게 된다.


특히 이 노래에서 여러 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멀어만 가는 마음'이다.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내가 너무나 싫었던 것’ 뿐인데,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자꾸만 반대로 멀어져만 가는 아이들의 마음이다.


사실 그맘때 아이들을 그냥 겉으로 볼 때는 어른과 가족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래 친구나 이성 친구, 게임, SNS 등 아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록 순위 안에 진작에 가족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어떨 때는 함께 사는 가족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세상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이 상태에 맞춰준다는 핑계로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를 조금은 무심하고 심드렁하게 대했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넌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친구들의 사랑이 더 필요한 시기가 됐구나’ 지레짐작하고 섣불리 긴장의 끈을 풀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니, 어쩌면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시기야말로 어느 때보다 어른들의 사랑이 필요한 순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흔들리며 찾아가야 하는 시기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인정받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치열하고 복잡한 중학교란 세계에 처음 들어간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 놓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하다. 이제 온 힘을 내어 자신의 자리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녹녹지 않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삶이 더 그렇게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자신을 비교해야 하는 환경에서 외모, 인기, 학업 등으로 자기 검열이 일상화된 삶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으려면 꽤 단단한 돛이 필요할 것만 같다.


솔직히 난 선도 이후 아이의 삶에서 조급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감정인지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앞으로 고쳐야 할 것들로만 가득한 시험지를 풀고 있었던 것 같다. 청소년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는 언니와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딸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봐야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어느 날 저녁, 아이와 함께 우리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선도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학교에서 요즘 어떤 것들을 느끼는지,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아이가 어색한 말로 마음을 조금씩 표현했고, 나는 집안일을 밀어 두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아이를 꼭 안아줬다. 아이가 내 등이 다 젖도록 펑펑 울었다. 왜 난 이제야 아이를 안아줬을까, 후회가 큰 파도처럼 밀려왔다.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고 있었을까. 안아주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는데, 왜 엄마가 돼서 그 쉬운 일조차 못 했을까.


볼빨간사춘기의 노래처럼 사춘기는 참 ‘아름답게 아름답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아픈 만큼 아파해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남아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찌할 수 없는 마음과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만나 ‘어쩌면 짧게 빛을 내볼까 봐’ 간신히 붙들고 있는 시절을 상상해본다. 참 아름답고 예쁜 시간에 왜 그때 우리는 그렇게 힘들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15살의 나를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열다섯 살 아이를 꼭 안아 줄 수는 있다. 얼마나 얼마나 아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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