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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아이 3

중학생의 세계

by 요롱 Mar 22. 2025

아이는 새 학기 어느 교실, 어느 자리에 앉느냐 물었다. 3월에도 민건이로부터 종종 무언가를 묻는 문자가 왔는데, 담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이후 2학년이 되면서 할아버지 병세가 악화가 되어 아빠와 다른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다는 문자를 끝으로 더는 나에게 문자가 오지 않았고, 이제는 2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여느 때처럼 궁금한 것을 묻는 듯했다.     

민건이의 담임 선생님은 민건이가 잘 씻지도 않고 머리도 잘 감지 않고 오는 모습에서 돌봄의 심각한 부재를 느끼셨는지, 학생부장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다녀오셨다. 나는 민건이가 2학년 되는 해에는 때마침 교육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의회 자리에서 민건이의 사정을 여실히 들을 수 있었다. 민건이네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집안 형편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집에는 할머니만 계셨는데 치매가 있으셔서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셨고 앉은뱅이 자세로 거동을 겨우 하실 뿐이며, 빨래도 세탁기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할머니 편으로 사회복지사가 와서 식사를 겨우 해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협의회에 참석했던 선생님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찰 뿐이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이를 직접 돌보는 사회복지사를 복지관에 요청하였고, 계속해서 아이를 방치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 민건이의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고발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돌봄에 있어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민건이는 여러 선생님의 도움으로 교내에서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정신의학과 상담도 주기적으로 받게 되었다. 복지사와 연락하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아이에게 여러 기관에서 들어오는 돈이 있어 경제적으로 생활이 불가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돈을 통장에서 꺼내 쓰고 하는 방법을 몰라 경제 개념을 가르치며 스스로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 발씩 잘해나가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긴급복지비로 아이의 운동화를 사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와 방과후에 신발을 사러 가기로 약속한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민건이 할머니도 어제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면서 집에 아무도 없게 돼서, 민건이가 보육 시설에 들어가는 걸로 고모가 어제 시청에 전화를 했대요. 당장 내일부터 민건이가 학교에 올 수가 없고 오늘 방과후에 바로 가야 한대요.  

  

간간이 민건이의 집을 들여다보던 고모는 암이 전이되어 민건이를 건사할 수 없고, 민건이 아빠 또한 교정 시설에 들어가게 되면서 민건이는 황급히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너무도 빠르게 전학의 절차를 밟게 되었다. 나 혼자 운동화를 사러 가서 이건 어떻게든 전해주자며 민건이를 떠오르는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반 친구들도 민건이가 갑작스럽게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왜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도 항상 응원할게!      

    

교실 한편에 놓인 민건이를 향한 롤링 페이퍼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에 코끝이 시큰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운명의 굴레로 남들이 겪지 않는 큰 아픔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야 하는, 그 마음은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무해한 아이가 더 상처받지 않기를 굳건히 지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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