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1. 모른 척 해도 이대로 괜찮은가요
도쿄로 발령받아 이사하는 친구가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모인 자리. 실컷 떠들다가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 친구가 간신이 던진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방사능은 못 피하겠지."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껏 도쿄에서 살면 재밌을만한 것들을 늘어놓았지만 진짜 걱정거리는 한숨처럼 지나쳐야 했다. 그저 우리는 그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며 떠나보냈다.
이사한 후, 가끔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장을 보는 것은 생협을 주로 이용하고 원산지를 따져서 먹는다. 정작 도쿄 사람들은 그 얘기를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놀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토록 기피하는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그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TV와 미디어가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정보를 내보내는 것에 우선 놀랐죠.
저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오래도록 동서고금에서 재난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위기 때 아무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설정은
영화 속에서도 없었던 초현실적인 이야기라 깜짝 놀랐어요.
-이와이슌지
영화 <3.11 :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n_QJWxw0BXU
2. 빙산의 일각, 사고의 이면
지진 당시 긴박감이 거칠게 살아있는 핸드폰 세로 영상. 가벼운 피아노 반주를 따라 사소한 고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그날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무나 가혹하기만 한 일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친구가 늘었다.
새로운 친구.
그리웠던 친구.
인터넷 세계에서 알게 된
아직 만난 적 없는 친구
아직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는 친구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런 친구 몇 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역대급 지진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친구'라는 희망으로 건너기를 시도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그의 아직 만난 적 없는 친구들이 등장하고, 이와이 슌지가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이끌어간다. 2011년 지진 당시 이와이슌지는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일본 사회는 정체된 상태라고 판단하고 여기서 더 만들 영화가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런 시기에 찾아온 충격적 비극 속에서도 이 상황이 어쩌면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이번에는 픽션이 아니었다. 누구도 꺼리는 그 현실 속으로 그는 직접 뛰어든다.
알다시피 동일본 대지진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겪어온 수많은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구조적인 산물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소련의 붕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것이었다. (러시아 위주로 재편되는 체제 속에서 체르노빌 지역이 소외되었고, 고르바초프에게 인정받고 싶은 과욕으로 무리하게 가동하다가 사고가 터졌다.) 늘 그렇듯 겉모습은 과학기술이었지만, 정치 논리가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경제 논리에 지배되는 기업, 책임을 저버린 미디어, 진실에 무뎌진 과학자들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향한 계란 던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친구들'의 용기있는 의견들이 이어진다.
3. 절망만 하다가는 그대로 지는 것 아닙니까?
방사능에 대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선 미디어들은 '정부의 말은 옳다'는 전제 아래 움직인다. 다른 의견을 냈다가 주류 미디어에서 퇴출당한 한 저널리스트는 기업 기부금 등 자본에 얽힌 이해관계를 설명한다. 그가 특히 놀란 것은 여론을 형성하는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도 상황 인식이 옅은 정도를 넘어서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질문하지 않거나, 자본 논리에 유리한 질문만 허용한다. 그는 이 시대에는 유니콘과도 같은 고전적 질문을 되살린다.
"저널리즘에 대해 제가 배운 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진실을 알리는 용기와 각오였어요"
원자력을 연구하는 베테랑 과학자는 말한다. 자신이 학생이던 시절에는 유망하다고 하여 원자력을 전공했지만,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순서가 바뀌었다며 후회한다.
그들 역시 강경하게 상대를 비방하지는 않는다. 정부를 지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교수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제가 마흔 살 정도이고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교수였다면 연구에 필요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그럴 수 있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을 알리다가 주류에서 밀려난 야마모토 타로 교수의 인터뷰였다.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극히 거부하는 그 교수는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며 과거를 돌아본다. 마침 원전 반대활동을 시작한 시기가 중국 문화 대혁명 즈음이어서 당시 주역이었던 6인조에 비유하며 그 그룹을 4인조에 빗대며 후일담을 전한다. 긴 세월 동안 겪은 고초야 다 알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는 웃어 보인다.
"절망만 하다가는 그대로 지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따금씩 연구를 함께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돌려보내거나 다른 교수에게 소개한다. 자신과 엮이다가는 앞으로 취직의 길이 영영 막힐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이다.
이와이와 친구들은 반대 의견을 낸다. 이 문제를 앞으로도 해결하려면 학생들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알아채지 못해도 희망을 갖고 싶으니, '내가 있다. 모두 오라'고 학생들을 환영해 주면 좋겠다.
4. 아직 만난 적 없는 친구를 만나는 방법
오늘날 무슨 일이든 기후변화 탓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화되기는 했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지구의 기후는 결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기후위기 이슈에 대해서 가장 공감되는 의견 중 하나이다. 이와이슌지의 관점도 평소의 생각과 비슷해서 많이 공감했던 부분이다. 그는 기후변화보다는 빙하기가 더 위험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일반화되는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이월드'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일찍부터 사회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는 스크린에 드러난 이와이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롭게 자극한다. 그는 기존의 다큐멘터리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호의적이었던 온라인 매체로, 또 사회문제로 파고들면서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관점으로 인터뷰어가 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하는 호기심이야말로 최고의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B급 아이돌'이라 소개하며 원전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소녀와 함께 후쿠시마 센다이 지역을 스케치한다. 폐허가 된 마을,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풍경이 되어버린 그곳을 함께 걸어본다.
누군가의 어느 찬란했던 날을 장식했을 금메달이 바닷가 어느 방파제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소녀들이 젊은 락커들이 나서서 사회를 계속 깨우고 있다. 계란 치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이것이 이와이 슌지가 '아직 만나본 적 없는 친구'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친구란, 좋은 사람에 대하여, 선의를 품고 있어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서로가 알고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립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중에서
*<3.11:이와이슌지와 친구들, friends after 3.11(2012)>는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