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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04. 2024

내 안에 무언가가 무너져 가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

1. 약간의 환상이 필요해


반 고흐의 '노랑'은 특별했다. 해바라기에도 밤하늘의 별에도 시골의 오랜 성당에도 타는 듯한 노란빛이 감돌고 있다. 작업에서 그의 고민은 비싼 물감이었다. 원하는 물감을 살 여력은 되지 못했지만, 그를 위대한 화가로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작가 에릭 메이슬의 표현에 따르면, 고흐는 '가난'이라는 레몬에 설탕을 첨가해 레모네이드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싸구려 물감에도 내가 느끼고 넘어갈 장점이 있을 거야', 혹은 '이 물감이 나를 강하게 해 줄 거야' 상상할 줄 아는 그 능력이야말로 비싼 물감보다 값진 것이었다.


환상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일부러라도 환상을 품어서 진실을 똑바로 보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 

집시는 예술에 큰 영감을 준 존재들이 분명한데 유럽에 가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관광 명소에는 늘 집시를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이 따라붙었다. 그전까지는 집시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라고 떠올린 적이 없었다. 물론 훔치고 폐를 기치는 것 역시 집시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고단한 삶을 그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환상이 필요했다.  


2. 칠면조를 안은 소년의 꿈


소년의 꿈은 결혼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5FQ5diryCjE

이그리주 집시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페르한은 할머니와 동생, 늘 붙어 다니는 칠면조와 함께 산다. 어수룩한 외모에 뿔테 안경을 쓰고 칠면조와 뛰놀고 별점을 치며 노는 것이 즐거운 소년이다.

할머니는 집시 특유의 영적 능력을 가진 분이었고, 페르한도 깡통을 움직이게 할 만한 약간의 초능력이 있긴 하지만 크게 쓸 데가 있진 않다. 칠면조는 할머니가 페르한의 결혼 밑천을 삼을 것이었다. 

남들 보기에 넉넉한 살림은 아닐지 몰라도 크게 모자란 것은 없었다. 이제 이웃에 사는 이즈라와 결혼을 하면 행복이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순순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이즈라의 부모님은 페르한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동생은 다리를 저는데 병원에 가려면 치료비가 필요하다. 마을의 어느 거부가 동생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꼬드긴다. 치료를 위해 페르한은 난생처음 고향을 떠난다. 그들은 이탈리아 로마로 향한다.

적막한 밤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동생이 엄마가 따라오고 있다고 외친다. 창밖에는 그들을 따라 웨딩 면사포가 날아오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0kMvdCPSo


3. 아무것도 믿지 못한다면


처음 겪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페르한은 혼란을 겪는다. 그가 따라갔던 거부집시 아이들을 앵벌이 시켜 돈을 버는 두목이었다. 혼돈 속에서 진탕 얻어맞고 난 후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익과 탐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그의 하수인이 되어 아이들을 밀수해 돈을 버는 범죄조직의 부두목이 된다. 이 일만 마치면 고향에 큰 집도 사주고 동생의 다리도 고칠 수 있다. 

칠면조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을 뛰놀던 소년은 그럴듯한 셔츠에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고 위스키와 여자들이 범벅이 된 거나한 술자리에 제법 잘 섞여노는 속물이 되었다.   


할머니는 페르한의 술자리에 찾아온다. 페르한은 그를 끌어안고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지만,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고향의 이즈라마저도.

 

"네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등을 돌릴 거다"

할머니는 안타깝게 손자를 바라보지만, 페르한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토록 더럽게 일해서 돈을 얻었는데, 지켜진 약속은 없다. 

http://youtube.com/watch?si=ybx417yfk4PtM7VT&v=WC2C6Ml-YVk&feature=youtu.be


4. 네가 흰 새를 낳는 꿈을 꿨어


페르한은 임신한 이즈라에게 말한다. 

"네가 흰 새를 낳는 꿈을 꿨어"

페르한은 이즈라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믿지 못한다. 페르한은 이즈라가 아이를 낳을 때 차마 다가가지 못한다. 그때 마법처럼 공중으로 이즈라가 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잃어버린 어떤 시간들이 페르한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무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지만 무너져가는 감각을 느낄 수는 있다. 지나고 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슬픔의 무게로 다가온다.


집시의 시간은 아주 사라지지 않았다. 페르한은 자신에게 남은 집시의 정체성으로 원수를 갚아주기로 한다. 비록 그 끝은 모두가 사라지는 결말이라고 해도.


우리가 붙들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가 온전하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들.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것들이 가둬놓은 세계에서는 도저히 발견되지 않는 세계. 이 영화는 그렇게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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