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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pr 01. 2024

어딜 가도 왜 이렇게 다 똑같지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1.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우리는 침묵했다. 
낡은 자동차에 들어앉아 
라디오 채널을 바꿔가며 
남쪽 나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 볼프 본드라체크, <자동차 안에서> 중에서


친구들끼리 차를 탈 때의 흥분을 기억한다. 어른들이 몰던 차의 뒷자리를 차지하던 것과는 달랐다. 베테랑 운전 실력은 아니라 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시끄러운 음악을 마구 틀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이대로 부산까지 간다 해도 괜찮았다. 웅웅 거리는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며 어딘가로 달려가던 길 위의 시간, 그 끝에는 그토록 바라던 신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


2. 아메리칸드림 속으로


Screamin' Jay Hawkins -  I put a spell on you

https://www.youtube.com/watch?v=p-ptewD0cNo


에바도 그 땅에 도착했다. 사촌 윌리가 살고 있는 뉴욕의 어느 작은 방. 

헝가리 이민자 윌리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촌과 좁은 방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 그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움직인다. 간편하게 먹는 티비디너를 즐기고 악어 목을 조르듯 청소기를 돌린다. 에바에게 헝가리 말도 못 쓰게 하고, 미국에서 유행하는 드레스를 선물한다. 윌리의 친구 에디는 에바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윌리는 그를 어디에 데려가는 것도 귀찮기만 하다. 여기까지 와서 혼자 우두커니 방에만 있어야 하는 에바.

하긴 윌리와 같이 있다고 해도 온종일 TV 보는 것 말고는 하는 것도 없었다. 


에바는 심심한 시간들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혼자 방에서 춤도 춰보고, 슈퍼마켓에 들러 먹을거리도 사 와서 윌리에게 준다. 이대로 오래 머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곧 뉴욕을 떠난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선물 받은 드레스는 길에서 당장 벗는다.  


3. 처음인데 왜 똑같지?


도박에서 횡재한 윌리는 에디와 함께 떠난다. 같이 있을 때는 귀찮던 에바가 떨어져 있으니 그리워진다. 고모네 집에서 에바를 불러내어 따뜻한 남쪽으로 달린다. 하와이 남방도 입고 선글라스도 쓰며 야자수와 햇살 가득할 줄 알았던 플로리다는 막상 가보니 인적도 없고 백사장은 텅 비어있다.

거금을 손에 쥐고 있어도, 숙박비 추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에바는 몰래 잠입한다. 그렇게 멀리 달려서 따뜻한 해변으로 왔는데 여기서도 한 방에서 투닥거리는 3인조 그대로이고 혼자 남는 것도 똑같다.

에바는 심심함에 지쳐서 해변으로 나갔다가 뜻밖의 검은돈을 횡재한다. 여기까지 와서도 도박을 전전하는 윌리와 에디는 손에 쥐었던 거액마저 탕진한다. 


그들의 질문은 같다.   

웃기지 않아? 새로운 데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 같아.

You know it's funny. 

we come to someplace new, and everything looks just the same.


4. 이방인이어도 괜찮아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영어를 쓰고, 생활방식을 따라 하고, 겉모습을 꾸며도 그들이 딛는 땅은 알려진 미국과는 다르다. 무작정 따라 하지는 않았던 에바에게 행운이 따르는 것은 우연일 뿐일까.

이제 그들에게 '어디'가 중요하지 않다.

이 땅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히려 발 딛고 있는 이곳이라도 좋다.

헤매본 적 있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는 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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