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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사라질 그 방에서

Cornelius - New Music Machine

by 베리티

사촌언니의 방은 2층에 있었다.

아파트의 작은 방에 사는 초등학생은

명절이면 찾게 되는 그 방이 좋았다.


커다란 LP들이 꽂혀있었고

만화책들이 바닥에 널려있곤 했다.


가끔 오보에 레슨 선생님이 찾아오는 날에

그 방은 굳게 닫히기도 했다.


언니가 학교에서 늦게 오는 날엔

창가에 바짝 붙어 낯선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샹들리에가 반짝이던 맞은편 집의 거실엔

누가 모이는지 궁금했다.


타다닥 장작이 타고 있는 벽돌로 지은 벽난로.

페르시안 카펫 위 졸고 있는 고양이를 상상했다.


어느 해 명절에는 그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 언니는 베개를 하나씩 챙기자고 했다.


베개를 들고 대문을 나서 도착한 곳은,

온통 암흑 천지인 그 집이었다.


언니는 이 집이 곧 헐릴 것이라고 했다.

천장이 높던 그 거실은 텅 비어 삭막했고,

베개를 하나씩 들고 두 사람은 모퉁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의 가방에서 후드득 쏟아진 것들은 만화책과 과자봉지들.

우리는 베개를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창 너머의 푸르스름하던 달빛 그림자가

바닥에 판화처럼 선명하게 찍혔다.


선이 내려와 있던 알전구의 총총한 빛 아래

만화책 더미와 베개에 파묻혔다.

빈 공간은 공상의 구름이 떠다녔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과자를 씹는 소리가

바싹 구운 쿠키처럼 바삭했다.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그 방

그 밤에 우리에겐 부족한 것이 없었다.


언니는 다만 입시 시름을 덜고 싶었던 거지.

나는 그저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믿고 싶었지.


내일이면 허물어져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도 모르던 시간들.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나를 이루는 어떤 것들은

아무것도 없던 그 방에서 시작되었다고.



Cornelius - New Music Machine

https://www.youtube.com/watch?v=j1dbfGERSt4

코넬레우스는 '90년대 후반에 꽤 유행하던 시부야케이의 조상 같은 밴드이다. 오마다가 게이고라는 걸출한 천재의 1인 밴드인데 목소리부터 수퍼 I 성향이 묻어난다.

코넬리우스는 영화 <혹성탈출>에 나오는 고고학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

또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비유대인 기독교도라고도 전해진다.

혼자 방에서 이것저것 뚝딱거리며 음악 만드는 그의 음악적 실험과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 이 배어있는 이 앨범 <Fantasima>를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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