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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얼음바다를 갖는다는 것

Modest Mouse - Doin' Coakroach

by 베리티

북극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모험을 떠난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까. 실은, 일 때문에 자료로 받은 거였다. 인물 뒤로 보이는 꽝꽝 얼어붙은 세상에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문다. 얼음 그리고 또 얼음, 빙하와 파란 하늘이 전부인 세상. 그곳의 햇빛은 유난히 맑고 투명하겠지. 찰랑찰랑 얼음을 흔들어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신다. 유리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종소리 같다. 갑자기 머리 위로 얼음 궁전이 세워진 듯 같이 얼얼하다.


언젠가 남극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차고 시린 벌판 한가운데 과학자들의 연구소가 있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극강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바깥과 달리 그 안은 태풍의 눈처럼 아주 조용하고 아늑했다. 이런 곳이라면 방해받는 일 따위는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카메라는 연구실 한쪽의 바닥으로 향한다. 그곳에 원 모양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지하실? 눈이 커지며 그 바닥을 바라보았다.

남극의 지하실이란 무슨 뜻인가. 그러니까 빙하 위에 지은 연구소의 바닥이라는 것은...! 얼음 구멍이었다. 빙판 위에 세워진 건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밑은 깊고 푸른 바다다.

잠수부 복장을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안전하게 붙들어주는 줄 따위는 없다. 여기는 남극이라 나침반도 소용없다. 줄을 달면 오히려 움직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거다. 아주 위험하다.

잠수부가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그 구멍을 잃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얼음 밑에 갇히는 것이다.

휴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인데, 그렇게 오래 생각했다면 그 구멍을 파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메라는 잠수부를 따라서 바다 밑을 비춘다. 잠수부는 이미 바다가 고향인 사람처럼 자유롭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세계가 다가온다. 빛을 내면서 떠도는 거대한 해파리, 커튼을 뒤집어쓴 것처럼 헤엄치는 바다 생물, 심해의 깊은 골짜기에서 리듬을 타듯 살살 흔들리는 산호초. 저절로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귓가에 울려오는 듯한 풍경이다. 바다 산책을 마치고 잠수부가 위로 떠오른다. 여기서 감독의 코멘터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바다보다는 우주 같다고 했다. 실제로 심해 생물 중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라고 한다. 70%가량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나. 어떤 면에서 심해는 우주보다 더 멀지도 모른다.


이렇게 산책하다가 만난 생물들을 지상으로 데려오면 과학자들이 관찰하고 연구한다. 시간이 나면 과학자들은 뒤통수가 볼록한 TV로 SF영화들을 본다. 낮이면 바다밑을 탐색하다가 별이 총총한 깊은 밤이면 같이 모여서 TV앞에 앉은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러다가 어렵게 겨우 성과를 내면 과학자들끼리 축제의 시간을 갖는다.

그 축제라는 것은, 이번에는 지하가 아니라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일렉 기타를 들고 벌판을 내다보며 연주를 한다. 관객은 없지만 빙하와 깊은 바다 생물들이 아마도 듣고 있지 않을까. 차가운 공기를 뚫고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은 줄이야.


극지방을 담은 사진 한 장에서 남극의 연구소를 떠올렸다. 이미 안락하지 않은 장소에 가 있지만 그곳에서도 얼음을 뚫고 미지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과학자들의 일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연구소 옥상에 올라 기타를 튕기며 신나 하는 모습은 여전히 모험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좀 알만하다고,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고 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묻는다. 너의 내면에 깊이 탐구하고 싶은 얼음바다가 있는지, 그런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는지를.

그들의 표정이 천진한 것은 아마도 그런 호기심과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멈춰서 들여다볼 나만의 내면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 사진 - 베르너 헤어조그의 다큐멘터리 <세상 끝과의 조우> 중에서


* 노래가 좀 셉니다. 거친 기타 사운드와 마구 내지르는 생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클릭 금지!


Modest Mouse - Doin' Coakroach

https://www.youtube.com/watch?v=RIXWhTjnQwQ

오래전 신촌 어느 클럽 지하에서 한낮에 음감회를 할 때 친구가 틀었던 곡이다. 나는 이런 곡도 알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없다고 할 수 없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이런 곡을 들으면 우리 모두는 아, 그냥 할 말을 잃는다. 다들 조용히 듣고 있다가 후렴 부분에서 작은 탄성이 나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Modest Mouse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밴드는 아니지만, 팬층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바퀴벌레춤'이라는 제목이 좀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어딘가 불안정하게 살아남는 현대인을 그리고 있다. 바퀴벌레처럼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그런 바람 혹은 희망도.

그래도, 사실 우리는 이런 곡을 듣고 싶어서 레코드 가게를 뒤지고 발품을 한다.




*그동안 이 연재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좀 취향 타는 노래들을 올렸는데 들어주셔서 좀 놀라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는 나만의 얼음바다를 갖는 것에 대한 탐구를 해볼까 합니다. 바퀴벌레?로 유명한 소설의 작가의 삶을 엿보면서요.

(더불어, 혹시 제 책을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지만^^ 내년에 출간될 듯합니다. 책 표지라도 나오면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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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