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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Oct 11. 2024

'한국이 싫어서' 떠날 결심한 젊은 의사를 떠올리며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H는 사직전공의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막차타고 입학해 4년을 공부하면서 학자금 빚이 잔뜩 쌓였다. 


사회는 그에게 의사만 되면 몇 천만 원 따위는 금방 갚는다고 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시를 보고 의사 면허를 땄다. 


어느 대학병원에 들어가 인턴으로 1년을 일하면서 무슨 전공을 할지 고민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망한 과의 전공의 1년차가 되었다. 


이제 몇 년만 고생하면, 사람들 말대로 몇 천만 원의 대출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정부에서 갑자기 의대 정원을 그의 빚만큼이나 늘리겠다고 선포했고 의료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미래가 암담해진 그는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정부와 병원은 한동안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았다. 


서류 상으로 대학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그는 다른 로컬 병원에 일반의로 취직할 수도 없었다. 


달마다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가 있었고, 그가 사는 방의 월세와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는 건설 현장 일터에 나갔고, 패스트푸드 점에서 감자를 튀겼다. 


이렇게 번 돈으로는 대출 이자와 원룸의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밤 새워 공부하느라 굽어졌던 등으로 건설 자재들을 나르고, 펜과 메스에 익숙했던 손에는 튀김유에 데인 상처가 늘어갔다. 


이럴 거면 왜 공부했을까. 


그는 생활고 속에서, 수 년간을 공부하고 경쟁하고 의학에 헌신한 삶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그는 한국이 싫어졌고, 한국을 떠날 결심을 했다.


나는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H를 떠올리지 않을 없었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p10



개개인의 사정을 모르는 우리가 사직전공의들을 무턱대고 욕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한국 사회 속에서 믿었던 많은 것들이 수 개월 사이에 무너졌다. 


돈도, 보람도, 직업적 가치도 흔들리고 있다. 


이기적이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MZ세대라고 내몰리면서, 뒤통수를 맞은 그들은 점점 더 떠밀리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하필 이 세대에 한국 사회가 그들의 믿음을 저버린 것이다. 


이제 그들은 한국을 저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 불어. 햇빛이 짱짱해서 난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면서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나 자신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라고.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p188



행복을 찾아 떠나는 젊은 의사들을 한국이 막을 수 있을까?


자기의 행복을 빼앗는 나라에 이들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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