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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Oct 23. 2024

계절을 느끼며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 24가을

 예전의 가을은 수줍은 빨간 단풍과 함께 천천히 다가오는 느낌이었는데, 올해 가을은 날선 칼바람과 함께 돌진하듯 다가오는 느낌이다.

 한여름 달릴 때는 선선한 가을날을 꿈꿨는데, 막상 가을이 되니 쌀쌀한 날씨에 감기 걱정부터 하게 된다.

 20대 때는 계절의 변화를 풍경의 변화로 느꼈는데, 40대가 되니 계절의 변화를 온몸의 변화로 느낀다.

 여름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근육을 풀고 달리면 됐는데, 가을이 되니 쉽게 근육이 풀리지 않는다.

 스트레칭 시간도 길게 가지고, 몸 풀기 조깅까지 1~2km는 해야 땀이 나며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다.

 바지도 반바지를 입고 뛰니 춥지는 않은데 무릎이 뻣뻣한 느낌이라 긴바지로 갈아입었더니 한결 다.

 무릎의 그 뻣뻣한 느낌이 무릎이 시린 느낌이라는 걸 게 되었다.

 일어나는 시간을 새벽 6시로 늦추고, 달리는 시간도 해가 있는 낮으로 옮겼다.

 여름에는 그렇게 해를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해는 다정한 달리기 친구이다.

 계획에 맞추려 노력하던 삶에서 내 몸에 자연스럽게 맞추는 삶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서서히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간다.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할 때 목표를 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대부분 내 안이 아닌 내 밖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내 안에서 기준을 잡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그 경험을 했다고 하는 밖의 사람들을 통해 기준을 잡는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X 등등......

 SNS에서 특출나게 잘 하는 사람들이 기준이 된 세상이다 보니 그 기준대로 따라하면 숨이 가빠온다.

 그래서 그냥 하기로 했다.

 그냥 해 보면서 내가 느끼는 몸의 변화, 감정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근육이 과부하일 때는 어떤 느낌인지, 내 면역이 낮아졌을 때는 어떤 느낌인지 내 몸과 소통하며 기준을 잡아가고 있다.

 요즘 알게된 건 내가 생각보다 추위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추위를 느끼는 건 심리적인 부분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근육의 움직임같은 신체적인 부분도 변화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옷차림도 조금 더 보온에 신경 쓰고, 잠 잘 때 이불도 두꺼운 걸로 꺼냈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20분 정도 마무리 스트레칭 운동을 해서 자는 사이 근육이 긴장을 풀고 휴식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실행한 것들이 내일 하루의 밑거름이 되는 것을 느끼며 나아가고 있다.

 실행하고, 관찰하고, 수정하며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보완해 나간다.


 이번 주말에 첫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며칠 전 도착한 기록칩이 달린 배번표가 신기해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슬슬 대회 계획을 세워야 할 때라서 목표 페이스를 어느 정도로 잡을 지 고민해 보았다.

 마음은 1시간 30분 이내(일반적인 10KM 마라톤 제한 시간, 8~9분 페이스) 들어오는 걸 목표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추워진 날씨로 여름보다 떨어진 페이스를 보이는 요즘이기에 1시간 40분(9~10분 페이스) 완주를 목표로 정했다.

 지금까지 내 몸과 소통하며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한 목표이지만, 대회 당일날 어떤 변수들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대회날에는 지금 정한 목표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목표 달성에만 몰입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도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회날 집중해야 하는 건 달리는 나와 내 곁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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