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 편입니다. 가족은 다음에!
결혼을 일찍 하고 임신과 출산, 육아를 먼저 경험한 내 친구들 중에도 난임 병원을 다니고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꽤 있다.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가끔은 시험관 했다는 사실을 가급적 알리지 않고 일급비밀처럼 유지한 채 임신이 되면 그때서야 소식을 알렸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터놓고 싶다면서 이야기해 주었지만.
당시에는 그 친구들의 마음과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말하면 편한 거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데 왜 말하지 않는 거지? 나는 원래 나의 아픔이나 힘듦을 말하고 나눠야 해소되는 사람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근데 그랬던 나도 이제는 그 친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관 시술을 한다고, 난임 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일단 미간부터 찌푸리면서 애써 공감하려고 하는 사람들, 누구 문제냐고 범인 찾기처럼 물색하려고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들, 뭔가 대단한 병에 걸린 사람을 대하듯 너무 과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 곁에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마 시험관 시술에서 여러 번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해야 할 때 그 사람들의 기대감마저 충족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 꽤나 큰 부담으로 돌아왔을 것 같다. 잘 돼 가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단계단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해줘야 하는 것도 심적으로 더 지치게 만드는 부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연유로 나도 많은 이들에게 말을 하지는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자주 연락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자세한 이야기를 할 뿐,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읽어주시는 이 공간에 내 마음을 털어놓으며 어쭙잖은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입을 꾹 닫게 되었다. 이럴수록 나를 생각해 주는 내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진심으로 나를 챙겨주는 그들에게 언젠가는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 오늘은 감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몽을 선물한 동생
먼저 생각나는 건 두 달 후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아는 동생이다. 내가 퇴사 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인스타에 올라오는 것들이 주로 집밥 콘텐츠였는데, 그걸 본 어느 동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생: 언니 요즘 주로 집에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언니도..?
나: 응?? 어떤? 나 퇴사해서 아직 백수야!
동생: 아..!! 나는 또 언니도 임신한 줄 알았어. 사실 내가 지금 임신 6개월 차라..!
나: 어머!!!! OO야, 너무 축하해! 전혀 몰랐어! 사실 나는 지금 병원 다니면서 준비 중인데 까딱하면 다음 달부터 시험관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직 잘 모르겠네. 지켜보고 있어. 너는 몸 좀 괜찮아?
동생: 응 언니. 나는 다행히 안정기에 접어들었어. 한동안 힘들었는데 이젠 좀 괜찮아. 언니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병원에 자주 가서 배란초음파 보고 그 날짜 맞춰서 했더니 성공했어.
언니도 잘 될 거야!
나: 아, 그렇구나. 나도 그렇긴 한데.. 아무튼 고마워!!!
동생: 응 언니. 착상에 아보카도, 자몽, 추어탕 이런 게 좋다고 하더라!!
나:오, 처음 들었어. 그런 음식들이 좋구나?
잠시 후 OO은 카톡 선물하기로 나에게 자몽 1박스를 선물했다.
나: 엥? 이게 뭐야ㅠㅠㅠ 나는 아직 너의 임신 축하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은데..
동생: 괜찮아 언니! 언니 자몽이 도움 된다고 하니까 잘 챙겨 먹고, 많이 힘들지 않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응원해 진심으로!
나: 아 정말 고마워.. 나도 좋은 타이밍에 너에게 도움 될만한 선물을 주고 싶어! 조금만 기다려줘! 자몽은 다시 한번 고맙고 진짜 잘 먹을게!
코큐텐을 건넨 친구
결혼식 이후로 1년여 만에 만난 친구 손에는 역시나 쇼핑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친구는 내게 별게 아니라며 영양제 통 하나를 건네었다.
친구: 이거 너 왠지 먹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난임에 좋다더라고. 나는 다른 이유로 먹는데 잘 챙겨 먹고 많이 고생 안 했으면 좋겠다!
나: 어머.. 나 먹고 있긴 한데 너무 감사하지. 쭉 먹을 거니까! 정말 넌 세심하다.. 늘 이렇게 잘 챙겨주어 고마워.
친구: 준비하는 과정이 쉽진 않을 텐데, 힘들 때 언제든지 연락해. 내가 일하느라 애기 보느라 답이 늦더라도 언제든 얼마든 들어줄 수 있으니. 꼭이야!!
나: 당연하지. 우리 분기에 한 번씩 만나자. 너무 잘 먹을게. 나 왠지 잘 될 것 같아!
유아식기를 선물한 친구
지난 11월, 친구 2명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이 중 한 명은 14개월 된 한 아이의 엄마인데 당일날 아이 물품들 챙겨 오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다며 미리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 섬세한 마음도 감사한데 선물은 다름 아닌 유아식기였다.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 집에 유아식기라니.. 실제로 받아보니 바로 목초육이랑 브로콜리 당근 사서 이유식 큐브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귀여움이 묻어있었다.
집들이 날이 되었고 친구들에게 유부초밥과 카레, 샤인머스캣을 내주었는데, 그 그릇에 담으면서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나: 이거 OO가 사준 거다~ 너무 귀엽지?
A: 우와, 진짜 귀엽네. 애기용이야?
친구: 응! 지금 힘들게 임신준비 중이니 이 귀여운 거 보면서 얼른 좋은 소식받으라고, 좋은 기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애기용으로 사봤어. 나중에도 두고두고 쓸 수도 있고 말이야. 실제로 지금 우리 집에서도 쓰고 있다!
나: 아 정말 섬세하다. 왠지 그런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했는데 진짜라니.. 좋은 기운 건네줘서 너무 고마워 친구.
친구: 오늘 우리 □□이도 데려왔으니 이 집에 애기 기운이 더 뿜뿜 할 거야! 분명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 잘하고. 언제나 응원하는 거 알지?
잘 버텨주어 대견하다고 말해준 친구
새해맞이 인사를 주고받은 친한 친구와 안부를 나눴다. 본인은 다음 주면 좋은 기회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픈 데는 없고 잘 지내고 있다며, 너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친구는 내가 현재 시험관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요즘 잘 되어가냐고 간접적으로 물은 거다.
친구: 넌 힘들지 않아? 괜찮아?
나: 나는 이제 이식만 앞두고 있어. 다다음주에 할 것 같아.
친구: 에구, 다들 힘들다던데 괜찮은 거야?
나: 아! 그래도 생각해 보면 채취하기 전에 주사 맞고 약 먹는 게 좀 힘들긴 했는데, 그것도 다 지나갔고. 채취가 좀 많이 돼서 복수가 차긴 했는데 이틀 지나니까 또 금세 가라앉아서 괜찮아졌어.
친구: 기특하다. 아주 대견해. 그래, 채취 힘든 거 잘 버텼으니까 이제 정말 잘 될 일만 남았어.
나: 그래야 할 텐데 말이야.
친구: 잘 될 것 같아. 고생 많았겠어. 좋은 소식 있으면 꼭 알려줘야 해!
나: 응 너두야! 술 조금씩 줄이고!!!!
친구들이 임신하고 출산할 때 나는 그쪽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도움 될만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선뜻 연락도 잘하지 못했고 무언가 위로나 축하의 선물을 건넨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랜 기간 싱글로 지내면서 그들의 인생 속도나 올곧게 가는 방향이 부러워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에 베풀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직도 짝도 없는데 저들은 언제 저렇게 짝도 만나 결혼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냐.. 신세 한탄하면서 남을 부러워하느라 배 아파했던 지난날의 지질한 나였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감사해할 줄 모르고 불안해하기만 하고 남의 인생은 시샘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이렇게 감사한 사람들이 붙어 있다는 게 어쩌면 부끄럽게도 느껴져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은혜는 꼭 그 사람에게만 갚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저들과 그 이상으로 베풀고 갚아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미래의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것들을 삶에 늘 새기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지. 질투보다는 축하하는 마음을, 나와 남의 인생은 각기 다른 시간으로 흘러가니 하나하나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고. 지금을 즐기고 매사 감사함을 잊지 말고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