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월요일 1차 동결 이식을 앞두고 병원에서 많은 약을 처방받았다. 크녹산이라는 악명 높은 주사를 처방받지 않아 정말 다행인데, 아침과 저녁 1알씩 먹는 약과 혈전 방지를 위한 아스피린, 그리고 아침과 저녁 각각 넣는 질정을 받아왔다. 총 18일 치 약을 약국에서 계산하니 28만 원이 나와서 깜짝 놀랐지만, 익히 들어왔기에 많이 놀랍지 않은 척 비닐봉지 하나 가득 약을 챙겨 왔다.
놀랍게도 약을 먹고 질정을 사용한 지 딱 하루가 됐는데 호르몬 녀석이 내게 제대로 찾아왔다. 다시금 불안했고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났다. 스레드에 들어가면 8차, 9차 이식을 앞둔 임신준비생들의 글이 보이고 나는 또다시 절망했다. 또 누구는 시험관이 여자 몸을 다 망치는 거라며 자궁암, 유방암 등 각종 암을 유발하는 행위라고 했다. 애써 찾아보지 않던 정보들을 한꺼번에 접하면서 심난하기도 하고 또다시 억울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몸도 엄청 피곤해졌다. 요즘 외출이 잦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축 늘어진다. 건조해서인지 눈도 잘 안 보이고 침침하고 천근만근 피로가 몰려온다. 한약을 먹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체력이 순식간에 확 떨어지니 의욕도 생기도 순식간에 감소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는데, 남편도 같이 잠드는 바람에 싱크대에는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가 늦은 밤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 좀 해주지..' 하는 서운한 마음과 '미리 좀 할걸'하는 후회가 한 번에 들어 또다시 짜증이 치솟기 시작했다. 쾅쾅 툭툭. 안 그래도 무거운 솥, 냄비들이 세제로 인해 미끄러워져 개수대 바닥에 계속 떨어지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꼬박 20분 설거지를 마치고 밤에 넣는 질정을 챙겨 침대로 향했다. 아침에 넣었던 질정은 기다란 플라스틱을 인공눈물처럼 똑 개봉하여 그 속에 있는 액체를 삽입했었는데, 자기 전에 넣는 질정은 좌약같이 딱딱한 고체였다. 어차피 '우리의 아기'를 만드는 과정이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은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나가달라고 하니까 한 번에 말을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리고 누워서 약을 투여하려고 하는데 처음이라 쉽게 되지 않아 이물감도 많이 느껴지고 애를 먹었다. 이제 다 됐다 싶었는데 얼굴에 로션을 안 발라서 누워야 하는 타이밍에 벌떡 일어나 화장대로 향하니 겨우 넣었던 질정이 다시 나오는 기분이었다. 상당히 불쾌했고 찝찝했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못하게 된 몸이 된 것 같아 일단 다시 누워서 제대로 넣어준 후 남편을 불렀다. 저기 수분 크림 좀 갖다 달라고, 지금 내가 누워야 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남편이 장난처럼 '본인은 나의 간병인이다'라는 말을 해왔는데 진짜로 내가 간병을 받는 처지가 된 것 같아 순간적으로 좀 서러웠다. 게다가 남편이 본인 거 사용하는 대신 자꾸 내 거를 쓰는 바람에 수분크림 튜브가 잘 나오지 않아 또 화가 살짝 났다. 진짜 매사에 뾰족하고 한없이 예민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남편이 탈탈 털어준 덕분에 얼굴에 잘 바르고 누웠다.
근데 불을 끄고 누워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니 잠은 오지 않고 서러움만 밀려왔다. 왜 그랬는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이럴 땐 호르몬 탓으로 돌리는 게 편한데 역시나였다. 다음 날인 오늘 면접이 있어 준비도 하고 일찍 잠에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서 또 불편한 감정과 불안한 마음이 한 번에 찾아와 눈물이 떨어졌다. 불을 끄고 있어서 남편이 모를 줄 알았는데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진 것을 듣고 뺨을 만져보더니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울어! 왜! 왜! 왜 무슨 일인데!"
자주 우는 날 보면 남편은 토닥이며 이유를 묻는다. 10년에 한 번 울까 말까 하는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연구대상이겠지, 근데 낸들 알면 눈물박사가 되었겠죠.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는데 이유를 답하면 더 눈물이 터져서 다음 날 눈이 팅팅 부어 힘들 것 같았다. 끝내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티슈 10장을 꼬박 적신 채 30분 만에 눈물을 그쳤다.
왜 우냐고 제발 그만 물어봐. 왜 울겠니? 호르몬 때문이지.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내 감정에 대한 명분을 마음속에서부터 꺼내는 것도 때로는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그냥 가끔은 눈물에도 모르는 척해주라. 아니면 그냥 조용히 닦아주기만 해 주라.. 호르몬이 너무 한 번에 강하게 내 몸에 들어오고 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