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 이식,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다

by 깨알쟁이

오늘 드디어 결전의 날이었다. 동결 배아 1차 이식의 날.

아침 8시까지 병원에 가야 해서 출근하는 남편과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하여 햇귀도 보고 무겁지 않은 농담 하면서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수납하고 피 뽑고 수술 상담실에 들어가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남편은 출근할 시간이 되어 인사를 하고 떠났다. 간호사님의 설명을 듣고 수술실 내부로 안내받아 환복하고 회복실 겸 준비실로 침대가 즐비한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나와 남편의 공동의 것인 배아를 이식하는 것이다 보니, 내 인적사항뿐만 아니라 남편의 이름과 생년월일까지 묻고 침대에 뉘어졌다.

한 15분쯤 되었을까,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간호사분들의 대화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하면서 내 이름이 호명되어 간호사님들이 찾아와 커튼을 열기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OO님, 저희 이식하러 수술방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참고로 배아 이식하는 날에는 원활한 이식을 위해 소변을 참고 오라고 하셔서 차 타고 오는 내내 500ml 물을 마시면서 왔는데, 초음파로 봤을 때 괜찮게 느껴졌는지 더 물을 주시거나 더 시간을 끌지는 않아 우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방으로 옮겨졌는데 놀라운 것은 회복실보다 훨씬 따뜻했다는 점이다. 누가 그랬는데 되게 추웠다고.. 아마 채취할 때랑 자궁경 할 때랑은 또 다른 환경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이식은 채취나 자궁경과 달리 마취 없이 진행되는 짧은 시술이라 긴장이 되긴 했다. 마취하는 거면 눈감고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었는데, 직접 그 분위기를 눈과 귀와 코로 느껴야 하는 오늘이었기에 어제도 사실 긴장 탓에 뒤척이다 4시간밖에 못 자고 왔다. 몸을 침대 가장 아래 부분으로 내려와 무릎을 접은 채로 다시 침대 끄트머리에 누웠다. 그리고 머리 쪽이 아래로 내려가도록 모션베드를 조정했다. 이제 모든 세팅이 다 끝나갈 때쯤 주치의 교수님이 수술실에 들어오셨다.


"OO님, 안녕하세요. 저기 보이는 화면에 배아가 오늘 OO님한테 이식할 배아예요. 모양이 아주 예뻐요. 저렇게 동그란 배아는 보통 감자배아라고 하거든요. 등급은 상급이고요. 오늘 아프지 않게 잘해드릴 테니 착 붙여오세요~"


여느 때처럼 따뜻한 교수님의 시작 멘트와 함께 본격적인 이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자궁 내부가 아닌 배에 초음파 기기를 대어 살펴보는데 마치 임신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새로웠다. 5일 동안 썼던 약들이 부작용 없이 몸에 잘 받은 덕분에 난소가 붓지도 않고 자궁벽은 튼튼하게 두꺼워졌다고 말씀하셨다. 복수가 차는 사람도 있고 붓는 사람도 있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 정말 이식을 하기 위한 작업들을 하셨다. 마취 없이 진행되다 보니 나팔관조영술보다는 괜찮고 자궁경부암 검사받으러 갈 때와 비슷한 느낌의 거북함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데 간호사분들이나 교수님이나 다 조용했다.

뭐지? 벌써 끝난 건가? 그렇게 금방 끝난다더니 이게 끝?


아니었다! 갑자기 드라마처럼 정면에 보이는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리더니 연구원 분이신지 간호사 분이신지 이렇게 말씀하시며 들어왔다.


"김 OO 님, 최 OO 님 배아 1개 도착했습니다."


와, 판타지물을 즐겨보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순간적으로 그 자동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되게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배아가 도착했다니.. 그것도 내 이름과 남편 이름을 같이 부르면서 '우리의 것'이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배아 가지고도 이러는데 나중에 아기를 처음 만나게 되면 어쩌려고 이러니..)

아마도 동결되어 있던 배아를 갓 꺼내어(?) 수술장으로 들고 온 것 같은데,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는 게 느껴져서 너무 멋있고 감사했다. 누워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교수님이 그 배아를 이식하려고 준비하셨고, 정말 순식간에 거의 1분 만에 이식이 끝났다.

그동안 시험관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도 많았고 지금 이 시간들이 의미 있다고 느껴본 적이 사실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 같다. 잘 기억이 안 나는 순간들은 꿈에서 다시 경험해보고 싶을 정도로..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시면서 자궁에 잘 안착시켰다고, 잘 붙여서 다음 주에 보자고 하셨다. 진료실에서나 수술실에서나 마지막 말씀이 "수고하셨어요 OO님"인데 오늘도 어김없이 수고하셨다고 해주셨다. 수고는 본인들이 더 하셨으면서 말이다. 이런 따뜻한 사람들..

이제 다 끝나서 나가는 줄 알았는데 침대 채로 옮겨져 다시 회복실로 갔다. 거의 30분은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잠이 한 번도 안 왔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좀 긴장됐는데 이제 설렘과 감사함으로 바뀌어서 살짝 들떠있었던 것 같았다. 옆에 누워있던 분께서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식 전에 면역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해서 계속 여러 간호사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주사가 들어가는 속도, 환자의 실시간 상태를 체크하고 공유했다. 손발이 차고 배가 좀 아프다고 하셨는데 별 일이 아니길 바라며 무사히 끝난 나의 몸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분이 주사를 거의 다 맞으셨을 때 간호사 한 분이 내게 오셔서 오늘 이식에 대한 설명과 다음 일정에 대해 안내해 주셨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해도 되는 것들을 상세히 안내받고 마지막으로는 쿠키박스를 하나 선물 받았다. 임신에 성공하여 난임병원을 졸업하는 사람들에게만 선물이 주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식을 한 날에도 이렇게 달콤한 선물을 주다니 생각지 못한 감동이었다. 그렇게 서류와 쿠키박스를 바리바리 들고 나는 1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왔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확인을 하러 병원에 간다. 그전에 임테기를 사용해 봤자 정확하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월요일부터 드릉드릉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잘 아는데 분명 한 번은 해볼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 줘. 마음 차분히 먹자.


이번에 잘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잘 되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잘 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길을 예비하셨음을 믿고 다시 잘 준비해 봐야지. 한번 해봤으니 더 잘할 수 있겠지. 먹고 싶은 군것질도 차가운 아이스크림도 잘 참아낼 수 있겠지. 잘 되지 않았을 때에도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오늘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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