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30분, 안과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고 진료를 봤다. 다행히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안약을 잘 넣으면 된다고 했다. 애니가 같이 와서 진료를 보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닥터 첸의 진료가 없는 날이지만, 그가 아이의 눈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서 닥터첸을 만나니 “sorry” 라면 인사를 건넸다. 괜찮다고 했지만 발생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일이다. 간단히 진료를 보고 난 뒤, 애니에게 오늘도 산소 치료는 못 하겠다고 전달했다. 아이의 컨디션은 괜찮아졌지만, 엊그제 치료를 할 때 낯선 기구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단 오늘까진 안 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기 전 융캉제에 들려 뽑기(갓챠)를 하기로 했다. 대만에 와서 아이가 푹 빠진 것이 뽑기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뽑기를 좋아했지만 잘 시켜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고 낯선 대만 와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하며 한 번 두 번 해주었더니 제법 많이 해본 상황이 되었다. 가는 길에 유명하다는 길거리 간식인 ‘총좌빙’도 하나씩 사서 먹고 뽑기도 한번 한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에 있으려 했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요 며칠 구름이 많은 날이었는데 오랜만에 햇살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해서 근처 공원에 나가기로 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 평일 낮에 여유로이 공원 산책을 가는 것이 왠지 좋았다. 햇볕도 좋고 공원에 푸름도 좋고 아내와 아이와 걷는 것이 좋았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있을까’ 싶었다.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온 김에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공원 옆에 위치한 지하철 역에 붙은 카페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갔는데 아이가 마실 음료가 없었다. 평소 카페에 오면 나와 아내를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케이크나 아이스 초코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수술 후 한동안은 카페인이 있을 수 있으니 초콜릿을 먹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본인이 주문할 음료가 없다는 얘길 들은 아이는 입을 삐죽거렸다. ‘어찌 해결하지’ 싶을 때, 아이가 “나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했다. 수술 후 삼일째 대변을 못 본 상황이라 서둘러 지하철역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있는 칸이 두 칸이었는데, 양변기로 된 곳은 사용 중이었고 좌변기 칸이 비어있었다. 일단 급하니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용변을 보게 했다. 그런데 ‘아차’ 싶은 타이밍에 아이 오줌이 바지를 적셨다.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좌변기지만, 대만의 화장실에는 아직 많은 곳에 좌변기가 남아 있다. 양변기만 사용해 본 아이가 좌변기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집으로 가야 했고, 평일 낮 산책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오늘 산책은 아쉽지만 남은 기간에 또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