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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11일 차 - 후회하는 하루

by 천백십일

밤 중에도 아이가 눈이 아프다며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자주 눈이 아파본 사람이라 왠지 결막염이나 항생제 연고를 넣으면 될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몸이 아프면 그렇게 하겠지만 아이에겐 섣불리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도 없는 심야 안과가 있을지 찾아보고, ‘낮에 안과에 갈 걸’ 후회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연락해서 방문 시간을 옮겨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예정된 진료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시간이 되어 안과 진료를 받게 되었고 다행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수술 조치만 잘 되었다면 없을 일이기에) 각막에 큰 손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길 들었다. 항생제 성분의 안약을 넣고 안대를 한 뒤 저녁때쯤 다시 병원에 와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좀 나아졌는지 게임도 하고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낸 뒤 저녁에 다시 안과로 향했다. 이번엔 애니가 안과로 찾아와서 같이 진료를 보게 되었다. 안과에서는 많이 나아졌고 오늘 밤에는 안대를 한 채로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오라고 했다.


안과에서 애니는 우리에게 얘기도 전달하고 아이에게 한국어로 대화도 하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그녀가 감정에 따라 말하는 강도가 달라지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화난 상태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통하는 상대를 멋대로 재단하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한 행동이긴 하다. 이런 제멋대로 한 선입견은 그녀가 의학적인 부분에서 단호한 부분이 있고, 또 중국어가 가진 억양이라던지 그녀가 서툰 한국어를 하는 것이 합쳐져서 그녀에게 그런 이미지를 가지게 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아이는 힘이 빠져있었다. 안과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도라에몽을 보며 즐거워했었는데, 30분 정도 되는 외출에 체력을 소진한 모습이었다. 나와 아내는 저녁을 먹고 일찍 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이를 닦으러 욕실로 갔다. 욕실에서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어제도 역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나는 눈이 아파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왜 눈을 감고 있어”라고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거울에 보이는 모습이 징그러워서”라고 답했다.


답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수술을 하는 것을 아이와 오래전부터 얘기하고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이면 그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서 ‘왜 그러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텐데 대만은 그런 게 없네.”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수술 부위 붙은 거즈와 보호대 등이 붙은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었나 보다. 아이의 생각을 보다 일찍 알아챘어야 했는데.. 저녁에 안과를 다녀오는 길에, 퇴근 시간에 맞춰 길거리에 많던 사람들이 신경 쓰였던 건가 싶기도 하다.


안과를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로 시작된 하루가 아이를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로 끝나는 하루이다.


* 안과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여기 병원은 중간에 휴게 시간이 3시간 정도 된다. 예를 들어 오전 9시에 문을 열어서 정오쯤 문을 닫고 다시 오후 3시쯤 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료 시간도 보통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진료받는 입장에선 좋은데,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괜찮은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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