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날
congratulation
기다린 수술 날이 되었다. 옮긴 집의 어색함과 수술의 긴장감 때문인지,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결국 설정해둔 7시 10분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에 먼저 일어나서 알람을 껐다. 병원에서는 8시 15분까지 수술실 앞으로 오라고 얘기를 해준 상태였다. 아내가 먼저 준비를 하고 나도 세수만 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이가 일어났다. 아침을 챙겨 먹는 아이는 지난밤 8시 이후로 먹은 것이 없는 상태 였다. 하지만 수술 하는 날은 물도 마시지 말고 오라고 지시를 받아서 아무 것도 먹이지 못 한 채 옷을 갈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만의 겨울 날씨도 변덕이 심한지 엊그제는 23~4도까지 기온이 올랐는데, 오늘 아침 기온은 17도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병원에 가는 길에 보니 여기도 월요일 아침은 분주한 한주의 시작인 것 같았다. 도로는 막히고 회사로 학교로 향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그 틈새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마취과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 아내, 나 모두 병원으로 향하는 길부터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담당해 준 마취과 선생님은 활기가 넘치는 분이었다. (지난번 마취 상담을 했던 의사도 그렇고 여기 의사분들은 활기찬 분들인가보다.) 그 분 덕분에 좀더 밝은 분위기에서 수술을 준비할 수 있던 것 같다. 아이의 경우 성인과 다르게 수면을 유도하는 약을 요구르트와 함께 마신 뒤 약효가 퍼지면 수술실도 이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을 들었다. 그 뒤 설명처럼 요구르트를 마신 뒤 약효가 들기를 기다렸다가 아내가 아이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갔다.
오전 8시 35분,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와 아내는 대기실에 앉아 이후 일정을 설명 들었다. 대략 1시간 정도 마취와 수술 준비를 하고 대략 오전 10시 정도 닥터 첸의 수술이 시작 된다고 한다. 수술 시간은 대략 8시간 정도. 수술 당일에는 입원을 하고 다음날 퇴원을 하는데 입원하는 동안에는 보호자 한명만 아이와 남아야 하니 낮에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체력을 비축해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닥터가 상태를 확인 후 퇴원을 하게 되는데, 우리 같은 경우 회복에 도움이 되는 고압산소치료도 받고 집으로 가라는 얘기도 전달 받았다.
수술이 시작된 뒤 병원 대기실에 있다가 점심 시간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술이 잘 마치길 기원하고 수술이 끝나고 있을 일들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배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어두고 잠이 오지 않아도 침대에 잠시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고 다시 오후 4시쯤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수술이 끝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내와 나는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며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고, 예정된 시간이 다가올 수록 시간은 점점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기 전 아이는 곧잘 엄마에게 "엄마는 무슨 꿈 꿀꺼야?" 라고 묻고,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나면 "나는 주말에 재밌는 곳으로 놀러가는 꿈"이나 "나는 장난감 선물 받는 꿈" 같은 얘기를 했다. 그래서 지금 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꿈에서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 악몽은 아니길 바랬다.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다.
오후 6시 50분, 대략 수술이 시작된지 9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애니로부터 카톡 사진이 왔다. 아이의 수술 부위를 찍은 사진 있었다. 수술이 잘 됐다며 'congratulation' 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낮에 아내가 "오빠는 눈물이 안 나?" 라는 질문에 "어릴 때 많이 울어봤는데 울어서 해결되는 건 없더라. 해결할 방법을 찾는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봐."라며 짐짓 담담히 얘기한 것이 무색했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수술 부위가 생각해던 것보다 좋아보였고 예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술을 진행해준 의료진에게 감사하고 그 시간을 버텨준 아이에게도 감사했다. 어쨋든 내 눈물을 본 아내에게 놀림을 받았지만 결과가 좋다면 이 정도는 몇번이고 넘어갈 수 있다.
약 30분 정도 시간이 더 지난 후 회복실로 와도 된다고 해서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아이에게 줄 음료나 빵, 밤에 필요한 준비물 등을 챙겨갔는데 그것을 다 들고 갈 수는 없었다. 수술실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회복실이라 감염의 우려가 있는 것이 없을지 확인을 하고 가져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마취과 의사는 20 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아이가 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중간중간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났지만 졸리다며 계속 누웠다. 그러는 사이 닥터 첸이 와서 수술이 잘 끝났다고 얘기해주었다. 그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장시간의 수술로 인해 닥터 첸도 피곤한 것 같았다. 그가 떠나고 마취과 의사가 몇차례 더 왔었지만 아이는 일어나 앉아있지 않았다. 마취가 덜 풀린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지만, 의사 말로는 대화도 하고 물도 마시는 등 하기 때문에 억기로 깨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약 때문에 자는 것이 아닌 피로나 취침 습관 같은 부분이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얘기 해줬다. 나도 아이가 오늘은 체력을 보충하고 내일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리던 순간을 마주한 하루. 오늘은 모두가 평안하고 내일은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이 글이 공개될 오늘, 수술한지 일년이 되었다. 기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