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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17일 차 - 힐링 포션이 필요해

by 천백십일

집에서 드레싱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핑계로 오늘도 병원을 방문했다. 드레싱 하는 것을 다시 보고 싶다고 얘기해 둔 터라, 나는 드레싱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아내는 눈으로 봐두는 것으로 정해두었다. 처치실에 들어가니 웬디가 첫 단계를 해주더니 다음 단계부터로 넘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이쪽으로 와서 해볼래"라고 얘기했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이들은 직접 해보며 익히길 원했던 모양이다. 조금 뒤 애니가 들어와 드레싱 하는 법과 수술 부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어제 확인한 것처럼 수술 부위에 봉합한 자국 주변으로 아직 검붉은 색을 띠는 곳이 남아 있었다. 수술을 한 뒤 게임에서 아이템을 먹을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아지는 것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더 빨리 나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웬디와 애니는 '어떤 것이든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해'라는 얘기를 해준다.


이미 아내는 지난밤부터 여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수술을 한 지난주 집에서 회복하는데만 전념했어야 하는 것이 맞았을까?" "산소치료를 좀 더 받아볼걸" 같은 후회를 했다. 또 아내는 아이가 자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는지 신경 쓰고 그러느라 피곤이 점점 쌓이는 모습이다. 그런 아내를 보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된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오라고 했을까? 그것도 편해하지 않았을 테지만, 아는 사람도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곳보다는 좀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드레싱 처치가 끝났다. 내일 진료 때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병원을 나섰다.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은 구름 사이로 해도 간간히 비치는 날이었다. (1월의 대만은 해가 나와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이다. 그래서인지 기온은 20도를 오가는 날씨인데도 길을 다니다 보면 쌀쌀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해를 보니 왠지 밖으로 조금 돌아다녀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예약해 둔 꽃종이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간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공간에 종이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종이 관련 전시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2시 30분 예약을 해두었는데, 왠지 우리 세 가족만 체험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 누가 올까? 잘못 예약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부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서 찾아보니 어느 학교에서 단체로 학생들이 찾아와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마침 오늘 아이 유치원에서 수료식 사진을 찍는 날이라는데, 아이도 수료 사진을 찍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료 사진을 못 찍지만 대만에서 하루하루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돼서 체험실로 가보니 역시나 우리 셋만 체험을 하게 되었다. 체험실의 직원은 영어로 우리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다 보니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그 열정에 부흥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알려준 대로 종이 제작을 해보았다. 아이와 아내도 수조에 담긴 종이를 뜰채에 뜨고, 떠낸 종이에서 물기를 빼는 작업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A4 용지 정도의 종이를 한 장씩 만든 뒤 봉투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지금 나와 가족이 겪고 있는 것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하지만 한 고개 넘으면 한 고개가 또 나오는 상황을 겪게 되니 사람 마음이 한결같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누군가 마법처럼 혹은 게임 아이템처럼 효과 좋은 처치를 해줄 수 없을까? 그게 아니라면 물속에서 떠낸 종이처럼 물이 빠지길 기다리면 그 안에서 예쁜 색을 확인할 수 있을까..


* 뜬금없지만 대만에 와서 신기한 것이 날씨가 춥지 않은 나라인데, 수돗물이 꽤 차다. 오늘 실습에서도 종이가 담긴 수조의 물이 제법 차가워서 아이가 "손 시리다"라고 얘기했다. 지하수도 아닐 텐데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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