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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18일 차 - 산 넘어 산 물 건너 물

by 천백십일

잠결에 어디선가 '구르르 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잠은 깼지만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마도 새소리 같은데 곧 날아가겠지 하며 침대에서 더 뒹굴거렸다. 그런데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눈을 조금 떠서 창가로 가 창문을 몇 번 두드리고 다시 침대로 갔다. '이제는 갔겠지' 하는데 다시 울음소리가 난다. 또다시 소리를 들으며 침대를 뒹굴거리다가 결국 침대를 벗어나 소리의 근원을 확인했다. 덕분에 오늘은 아내와 아이보다 먼저 일어났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전 9시 닥터 첸의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다른 날보다 좀 더 분주하게 준비하고 병원으로 갔다. 웬디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곧바로 처치실에 들어가 드레싱 받을 준비를 했다. 지난밤 집에서 드레싱 할 때 아이가 힘들다고 눈물을 흘려서, 오늘 받을 드레싱이 잘 끝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웬디가 해주는 드레싱은 울지 않고 잘 받았다. 물론 아프다는 얘기와 함께 눈물이 조금 났다. 드레싱을 하고 실밥은 뽑는 중에 닥터첸이 들어왔다. 아이의 경과를 본 그는 '아마도 수술 부위에 피가 조금 몰려서 그런 것 같다. 아마도 10일 정도 기다려보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줬다. 의료진 입장에선 다양한 상황 중 하나 일 수 있으나, 나에게 있어선 단 하나의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한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다만 "혹시 추가적인 처치나 재시술이 필요한 상황인가"를 물었을 때 "그렇지는 않다."라고 유일하게 확신에 가까운 답변을 받았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닥터 첸이 얘기해 준 것에서 좀 더 안도함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필요하면 의사가 적절한 처치를 해줄 것이야'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대만 생활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도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그 시간마저 느낌 상으로는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잠깐의 닥터첸의 만남이지만 고민을 조금 덜어내고 다시 처치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외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내와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들어보니 아이가 보청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좀 더 잘 듣고 싶어" 라며 보청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의 말에 "한국에 가서 한번 알아보자"라고 얘기했다. 청력에 대해서 아기 일 때부터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성장 과정에서 큰 문제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아이가 듣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잘 안 했는데 대만에 와서 그런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 대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또 방법을 찾아야겠다.


*오늘따라 회사에서도 연락이 부쩍 많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쌓여가고, 해결하다가 막히면 나에게 연락을 준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그런 것이 많은 모양이다. 항상 바다, 강이 고요할 수 없으니까, 오늘은 파도가 치고 내일은 좀 잔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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