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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19일 차 - 한국보다 좋아요

by 천백십일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8시 전에 잠을 깰 수 있다. 정확한 바이오 리듬 시계를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난다. 마치 어릴 때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일어나던 내 모습 같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이 많고 어두운 하늘 모습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맑음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침이 지나면서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왔다. 오늘은 타이베이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오전 드레싱을 하고 점심을 챙겨 먹은 뒤 동물원으로 향했다. 근처 다안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갈아타지 않고도 동물원으로 갈 수 있었다. 해당 노선은 지상의 고가선로를 통해 움직이는 열차였다. 타이베이는 시내를 관통하는 주요 도로나 전철을 고가 형태에서 운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방음벽을 따로 설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숙소처럼 집 안에 있어도 소음이 꽤 났다. 시내나 주거지에 조금이라도 가까우면 철옹성 같은 방음벽을 만드는 한국과 다른 모습이다.


약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나니 동물원역에 도착했다. 표를 끊고 동물원에 들어서니 단체복을 입은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귀엽다. 우리는 동물원 안에서 운영되는 열차를 이용해 동물원 상부까지 먼저 가기로 했다. 열차는 서울대공원에 코끼리 열차처럼 운영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열차를 끄는 것은 트랙터였다. 뭔가 예스러운 운영 방법을 본 기분이었다.


내린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파충류관이 있었다. 여러 마리의 이구아나들이 전시관 밖 나무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이곳의 기후가 실감 났다. 다음으로 펭귄을 보고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았다. 이곳은 한국보다 동물과 사람의 간격이 좁았다. 덕분에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었지만, 시설이 낡아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때부터 아이는 힘들다는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동물원의 반도 지나지 않았던 상태였다. 오르고 달래서 가던 중 하마를 발견했다.

한켠에서 덩치 큰 하마 대여섯 마리가 뒤엉켜 잠을 자고 있었다. 야행성인 하마의 습성상 자는 모습만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때 어떤 하마 한 마리가 하품을 하더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에게 “저 하마는 왜 일어났을까? 똥 마려운가” 얘기했는데, 맙소사 정말 물속에 들어가 똥을 눴다. 아이에게 하마에 대한 책에서 읽어주던 모습을 눈으로 본 것이다. 아이도 신기해했지만 사실 내가 더 신기했다. 그 뒤로도 한동안 하마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 좀 더 가보니 이번엔 코뿔소가 있었다. 그늘 밑 진흙웅덩이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내면서 코뿔소가 서 있었다. 하마, 코뿔소는 한국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으나, 보통 시력 2.0 되지 않는 이상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대만에 와서 뜻하지 않게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이곳 동물원의 진가는 바로 판다관에 있었다. 중국이 대만에 화해의 의미로 2008년 판다를 선물 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 판다와 달리 대만에게 소유권까지 넘긴 상태라고 한다. 당시 선물로 받은 콴콴은 2022년 11월 사망했고 이제 세 마리가 남았다고 한다. 이곳에선 실내와 실외에서 판다를 볼 수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줄도 관람 시간제한도 없었다. 한국에서 오픈런까지 생길 정도로 판다를 보는 것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타이베이 동물원에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판다를 꼼꼼히 볼 수 있었다.


판다를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넓은 것을 예상 못 하고 점심도 먹고 왔더니 전체 동물 중 절반 정도밖에 못 본 것 같다. 오늘의 기억이 좋아서, 아마도 대만을 떠나기 전 한번 더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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