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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22일 차 - 부모의 부모

by 천백십일

이틀 전, 부모님께서 밤 비행기를 타고 대만에 오셨다. 수술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와 준비물 등을 준비하던 시기, 혹시 대만에 오실 의향이 있으신지 여쭤봤었다. 아직 일을 하고 계시기에 휴가를 내는 것이 어려우셨지만, 거리가 멀지 않으니 주말을 이용해 오시겠다고 하신 상황이었다. 나와 아내 역시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머물 숙소도 있을 테고 이쯤이면 아이도 웬만큼 회복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물론 아이 컨디션은 충분히 회복되었지만, 수술 부위의 회복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


부모님을 마중하러 홀로 공항으로 향했다. 타국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혼자 이동을 하고 있으니 어색했다. 공항에 도착하고 살펴보니 비행기가 조금 연착이 된 모양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더 기다린 뒤에야 두 분이 출구 밖으로 나오셨다. 피곤하신 얼굴을 보고 있으니 괜히 오시라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 이렇게 와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짧게 인사말을 나누고 잊지 않고 대만 여행지원금 추첨을 하러 갔다.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옆으로 샌 아들을 보고 조금 당황하셨지만, 곧 추첨을 통해 지원금을 받게 되어 서로 웃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서둘러 짐을 푸시고 간단히 요기를 하신 뒤 잠자리에 드셨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곤 당황 반 반가움 반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대만에서 지내며 있던 일들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낸 뒤, 집 근처 딘타이펑으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셨다. 이때까지는 날씨가 꽤 괜찮았다. 적당히 구름이 있고 적당히 기온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타이베이 과학관을 가기 위해 스린역에 내리고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바람이 불고 약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어쩌나 생각하는데, 부모님께선 괜찮다며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하니 가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택시를 타면 됐을 일인데,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하고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을 했다. 결국 일층만 같이 돌아보시곤 '우린 여기 있을 테니 너희끼리 보고 와라'라고 하셨다. 어제도 늦은 밤 도착하셔서 피곤하실 텐데 너무 무리한 일정을 잡았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과학관을 나오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흐리고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었다. 근처 스린야시장에 들러 야식으로 먹을 것을 사고 아이가 원하는 건단 피규어도 하나 사고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같지 않지만 그래도 저녁 식사를 차린 뒤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1박 3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 일정으로 오신 부모님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크지 않지만 난 자리는 크다.'는 말처럼 부모님이 다녀가신 숙소도 뭔가 빠진 것과 같았다. 힘든 일정에도 와주신 부모님의 자리이다 보니 그 크기가 더 실감 났던 것 같다. 사실 대만에 오시면 한국에서 가져오신 물건들로 숙소를 좀 더 채워져 있었다. 생각날 것 같은 라면, 김부터 아이가 집에 두고 온 닌텐도 게임 타이틀과 한국어 책 등등 요소요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물건들과 함께 부모님의 애정도 남아 있을 것이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져다주신 게임 타이틀로 얼른 게임 한판을 하고, 가져다주신 만화책을 읽으며 남은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자신이 받은 사랑 속에서 편히 자길 바란다.

*대만 마트에 가면 빵을 파는 코너가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다. 매장에서 구워주는 빵도 있고 납품을 받는 형태의 제품도 있다. 이곳에 와서 빵류는 잘 안 먹어서 맛은 어떤지 궁금하던 차에 하나 사서 돌아왔다. 맛은 대만족. 약 4,000원 정도의 가격인데 큼직하고 필링이 가득한 슈크림이 6개가 들어있다. 한국도 먹거리 물가가 좀 내려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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