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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25일 차 - 걱정

by 천백십일

매주 수요일은 닥터 첸의 진료가 있는 날이다. 우리의 진료 시간은 오전 9시. 일찌감치 병원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엔 뭐 할지 고민하기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을 나서고 보니 기온은 10도 정도에 구름이 많고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지난주에도 아침엔 구름이 많다가도 10시~11시가 되면 구름도 조금 걷히고 햇살도 살짝 보이는 날이 제법 있어서 오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번 진료에는 통역하시는 강선생님 없이 진행해 보았다. 지난주에는 아이의 수술 부위가 걱정되어 길지 않더라도 닥터첸과 대화를 위해 강 선생님과 함께 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부터 이번 주 월요일이 지나며 수술 부위가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고, 이제는 회복이 많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젠 의료적인 의문보다는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하는 관리나 일상생활이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전문용어가 없을 테니 통역 없이 진료를 보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오늘 진료에서도 '아이의 수술 부위가 잘 회복되고 있나요?', '대만에서 더 체류하며 의료적 처치를 할 필요가 있나요?' 같은 질문을 했고, 돌아온 답변은 '잘 회복 중이며, 예정된 시일에 한국으로 가도 된다.'였다.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조금씩 해야 할 것 같다.

병원 일정을 마치고 예전에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시먼딩의 '진천미' 식당을 갔다. 날씨가 좋지 않았음에도 식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 서서 기다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들이었다. 약 20분 정도 기다린 후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길 건너의 본관에서 식사를 했는데, 오늘은 본관 문을 닫는지 별관만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보다 대기 줄이 길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계란새우볶음과 닭고기 볶음, 파인애플 마요네즈 새우 등을 주문했다. 그런데 먹으면서 지난번 본관에서 먹은 것과 오늘 별관에서 먹은 음식 맛이 조금 차이 나는 것 같았다. 특히 지난번과 오늘 동일하게 주문한 계란새우볶음을 먹어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본관 주방장님 실력이 더 좋은가 봐'라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다음에 오게 되면 본관으로 가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단수이로 향했다. 단수이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고,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인천 월미도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10년 전 아내와 왔던 곳으로 당시엔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반대로 오늘은 추운 날씨를 겪는 것이 왠지 색달랐다. 약 40분 정도 전철을 탄 뒤 도착한 단수이역은 '예전에 왔을 때 이랬던가?' 싶을 정도로 생경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이곳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을 나와 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갔던 대만식 스테이크가게, 대왕카스텔라가게 등을 발견하며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 하고 간단히 둘러본 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아이가 '친구보다 건담을 먼저 샀어야 했는데' 라며 아쉬워했다. 대만에 와서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치는 것이 힘들 아이에게 뭘 해줄까 하다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지난번 시먼딩의 한 가게에서 발견한 여러 건담 모양 프라모델이 랜덤으로 들어 있는 박스를 사주었다. 그 후 아이가 건담을 들고 병원 진료를 갔다가, 수술을 받은 다른 한국인 아이도 관심을 가지며 사러 가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아이는 그 얘기를 듣곤 그 친구가 어떤 건담을 뽑을지, 몇 개를 샀을지 등을 생각하며 종종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오늘도 시먼딩에 갔다가 건담을 한 개 더 얻은 아이가 집에 돌아오며 친구가 건담을 샀을지 어떤 것이 나왔을지 얘기한다. 왠지 그런 모습이 잘못된 행동처럼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그쳤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닌데 다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반복해서 얘기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아마도 '그냥'이라는 답을 할 것 같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아마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건담이 든 상자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어떻게 할지, 그래서 자신이 원한 모양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아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건강하고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잘하는 것일까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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