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온 지 20일, 아이 수술한 지 12일이 흘렀다. 그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닌 탓에 숙소와 병원 인근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한국 생활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시작된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 아침을 챙긴 뒤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현지인들의 출근 시간이 끝난 시간이라 길거리가 한적하다. 병원으로 가는 10분 남짓한 거리엔 키가 큰 나무들이 서있고 나뭇잎들이 햇볕을 가려준다. 맑은 하늘과 공기를 느끼며 여러 생각을 해본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져서인지 나도 생각에 여유가 생겼고, 그러면서 날씨가 더운 나라에서 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항상 더운 날씨에 나무와 풀은 매일 녹색일 것이다. 오기 전 들었고 지금도 두려워하는 거대 바퀴벌레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보다 위생이라거나 생각보다 물가가 무척 저렴하고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득 이곳에서 터전을 마련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나라에 여행은 다녀봤지만 '여기서 살까? 살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대만에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수술이라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다거나 이민을 올 계획이다 같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저런 뜬금없는 생각이 든 것은 결국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하고 아이와 아내의 대화도 들으며 병원에 도착했다. 웬디, 애니와 인사를 나누고 처치실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 수술부위를 보며 실밥을 하나둘 뽑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침대 위 베개를 베고 유튜브를 보며 심신의 안정 상태를 유지했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연고를 사용하자는 얘기를 듣고 처치를 받은 뒤 병원을 나왔다.
날씨가 화창하니 버스를 타고 시먼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국에선 존재도 몰랐던 건담 피규어를 하나 사고 시먼딩에서 타이베이메인역 접경쯤 위치한 우육면 맛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건담 피규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식당에서부터 꺼내서 살펴보고 그랬다.
점심을 먹었으니 디저트도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어 현지인에게도 유명하다는 '카리도넛'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라서 일단 걸어보았다. 조금 걷다가 아이는 힘들다고 투정이다. 걷다가 조금 업어주고 다시 조금 걷기를 반복하며 도넛집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이라 이곳 사람들도 불금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도 왔으니 기다려보자 싶어서 기다리기 시작했고 아이는 줄에 기다리며 몸이 베베 꼬였는지 엄마를 졸라 인근으로 왔다갔다 구경을 다녔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보니까 도넛을 한번 살 때 10개, 20개씩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줄이 길 수밖에. 꽤 오랜 시간 기다려 도넛을 사서 이제 가려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내 피규어는?"
주변 구경을 다닐 때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불안불안하다 싶었는데 결국 잃어버렸다. 구경 다녀온 곳을 다시 가보고 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아이는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지나고 보니 공간만 대만일 뿐 우리는 변한 것이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