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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16일 차 - 비가 오는 날

by 천백십일

일주일 만에 비가 내리는 날이다. 오늘 일기예보에는 낮시간에 잠시 내리고 말 것 같았는데, 아침부터 구름이 꾸물거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에 빗줄기가 제법 센 것 같아서 '이렇게 내리고 오후엔 그치려나' 생각했다. 그렇게 내리던 비가 점심때부터 약해지긴 했지만 멈추지는 않았고, 하루 종일 비를 흩뿌리고 있다.


오늘은 수술 부위를 감싸고 있던 몰드를 떼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전에 병원을 간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쩐 일이진 오후 2시에 병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수술하는 한국인 아이가 있었다. 일주일 전 우리가 경험했던 긴장되는 순간이 떠올랐고, 그들이 경험할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 바랐다.


날씨도 그렇고 병원 일정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졌고 집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침을 먹이고 아침 드레싱을 하고 난 뒤부터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이와 그림도 그리고 숙소 옆 학교 구경도 하고, 미로찾기 게임도 하고 몸으로 놀아주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직 시간은 10시였다. 나는 왠지 아이와 집에서 있는 것이 어색했다. 밖에 나가면 그냥 걷고 뛰기라도 할 텐데, 집 안에선 층간소음도 걱정되고 날씨도 춥고 공간도 어색하고 그렇다. 더욱이 집에 티비도 없어서 우리 가족이 하는 얘기 말고는 적막만 흐르는 상황이었다. 문득 라디오가 생각나서 스마트폰에서 라디오 앱을 실행했다. 오랜만에 한국말이 끊임없이 들리는 상황이 되니 왠지 한국 집에 머무는 기분도 들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라디오를 백색소음 삼아 덕분에 아이와 이렇게 저렇게 놀아주고 식사 준비도 하며 보낸 시간이 (라디오 틀기) 이전보다 훨씬 금방 지난 것 같다. 나에게 익숙한 말과 공간, 상황이 이래서 중요한가 보다.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가서 몰드 제거를 했다. 웬디가 몰드를 떼어주고 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뒤 수술한 손주를 보러 대만에 오시기로 하셨는데, 오시는 길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집에서 가져다주시겠다는 전화였다. 통화를 위해 진료실에서 나와있었는데 마침 그 순간에 몰드를 떼고 있었다. 아내가 전화를 끓고 들어와 보라는 얘기를 했다. 급히 전화를 끊고 들어가 보니 봉합 부위 주변으로 검붉은 흔적들이 있었다. 아내는 이전에 수술받은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종종 봤었던 터라,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이의 수술 부위에 검붉은 부분이 많은 것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조금 뒤 애니가 들어와서 상황을 보고 설명을 해주었고, 아이의 수술 부위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이제 웬만큼 아문 상황이고 이제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집에서 드레싱을 할 때 사진을 찍어서 카톡을 통해 공유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지난 주말 동안 궁금했던 부분과 오늘 확인한 수술 부위에 대해 답변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아내는 확인한 수술 부위가 많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반대쪽 부위에도 검붉은 피부색을 보였던 터라, 수술 부위에서도 비슷한 색을 보이는 것이 더 걱정되는 것 같다. 이런 날 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비가 오는 날이라 외부에 있기도 불편하고 우중충한 마음에 밝은 기운을 얻기 힘들었다. 나는 '병원에서 괜찮아질 거라고 하니까 기다려보자'라고 얘기하지만, 아내에게 크게 위로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아이였다. 집에 돌아와 밥도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 유튜브도 몇 개 본 아이는 신이 나서 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이 가끔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천진난만함이 아이와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놀고 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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