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제목의 책을 샀더랬다. 읽었나 안 읽었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 사실 그런 책이 수십 권은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읽으려고 눈에 들어왔다기보다는, 제목에 이끌렸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양가감정을 느끼게끔 하는 제목이 왜인지 지금의 상태를 얘기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세상만사에 흥미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그러한 흥미를 꼭 한 번은 해소해 보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다만 이 흥미라는 녀석은 어딘가에 말뚝을 박고 고정해 두기가 어려워 이리저리 튀어나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의 꾸준함에 대해 의문이 샘솟는다. 어떤 하나에 계속 관심을 지속하기 어렵고, 쉽게 흥미가 바뀌고, 단순 간에 질려하는 모습. 처음부터 의문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심이 덜 느껴진다거나 진득이 하는 모습이 없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나 둘 듣다 보니 더욱 그런 의문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속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도 있었다. 무언가 흥미가 생기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닌 '이런 걸 하면 조금 더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마음이 자연히 생겨났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꾸준함을 쌓아갔겠지만 내 안의 반골 기질이 작용한 것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떤 부분이 반골 기질을 건드렸을까?
우리는 꾸준함을 얘기할 때 삶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보다는 행위에 스코프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매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 몇 킬로를 달리고, 저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밤 11시 전에는 자고 술은 입에도 안 대거나 하는 그런 얘기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꾸준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인해 나온 행동가짐일 뿐일 텐데, 우리는 행위에 집중해서 본질을 잊고 미라클 모닝이나 금연, 단주 등으로 그런 마음가짐이 자연히 생길 것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지속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꾸준함의 대상은 태도나 마음가짐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니 의문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갈지(之) 자로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앞으로도 그리 걸어갈 길에서 나의 나침반은 어디로 향했는가.
하루를 충실히 즐기고, 집중하는 삶. 세상을 사랑하는 삶. 그거면 됐다. 그리고 비틀거려도 걷고 있지 않은가? 또 멈추면 어떠한가. 자연히 다시 걷겠지. 바위를 밀어 올린 날이 있으면 하루는 내려가는 바위를 가만히 지켜보는 날도 있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밀어 올리기 힘들어 주저앉는 날도 있겠지. 매일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보다는 조금 덜 부지런하게 살련다. 그럼에도 세상 속에서는 나도 모르는 새 나라는 바위가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겠지.
사실 꾸준한 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꾸준함이 무언가 한 가지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꾸준하게 꾸준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 2주 만에 연재하는 이동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