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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Oct 30. 2022

완벽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상대방이 베푼 호의가 고맙기만 한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언니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그녀는 “살면서 너무 많은 조언 때문에 괴로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위하는 척해도, 결국 못 미더워서 참견하는 거 아닌가. 


“말수도 별로 없고 조용한 편이라 그럴까요? 남들 앞에서 큰소리치지 않아서 그렇지, 저는 주관이 뚜렷하거든요.”


‘엄마의 첫 책 쓰기’ 강의를 할 때, 수강생으로 만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리고 조언을 구했다. 일상이 너무 평범해서 쓸만한 글이 없다고. 그저 자기 주변엔 조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늘 답답할 뿐이라고. 



나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함부로 조언하는 사람에게 웃으며 거절하는 법’ 같은 책을 쓰면 어떻겠냐고. 상대방을 상처 주려고 일부러 폭언을 퍼붓는 것도 문제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 조언을 계속하는 것도 폭언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날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흔쾌히 써보겠다고 했던 그녀가 며칠 뒤 메일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그런 주제로는 글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언니들이 자기 글을 읽고 상처받는 걸 원치 않는다는 말과 함께.



에세이를 쓸 때 얼마만큼 솔직해져야 할까? 

사생활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나 역시 암 경험을 주제로 첫 책을 쓸 줄은 몰랐다. 아픈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암에 걸렸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고, 친자매한테도 힘들다는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꼭꼭 숨겨온 마음을 책으로 쓰려니 걱정이 앞섰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내 사정을 다 알게 될 거란 걱정 때문이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지독한 출간 우울증을 앓았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앓듯이. 작고 여린 아이가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잘못되어 버릴 것만 같아 괴로웠던 그 시절처럼, 세상 밖으로 나온 내 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책을 내고 1년 넘게 기쁜 날보다 후회한 날이 더 많았다.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저자랍시고 떡 하니 이름이 적혀있었지만,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지인들이 책 가져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숨고 싶었고, 읽어보겠다고 하면 손사래 쳤다. 잘 읽었다고 하면 건성건성 웃으며 말을 돌렸다.



생전 연락도 안 하던, 대학생 때 사귀었던 남자 친구한테서 연락이 온 날은 두렵기까지 했다. 내가 책을 쓴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낯선 사람처럼 깍듯한 존댓말을 써가며 잘 읽었다고 하는 그가 무서웠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게, 꼭 나 혼자 길거리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았다. 

강의 의뢰가 빗발쳤다거나, 인터뷰가 쇄도했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그런 상황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출간 우울증을 앓는 동안, 책 쓴 걸 후회하면서도 내 책이 누구에게 가닿았는지 궁금했다. 초록색 검색창에 내 이름을 종종 검색했다. 정성껏 써주신 리뷰를 읽으며 내 책을 부끄러워하는 건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내 책이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걱정되면 두 권 쓰고, 세 권 써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책을 낸 지 1년이 넘어서야 내가 쓴 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첫 책을 내고 나서 느낀 후회와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첫 책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처음 암을 겪고 느꼈던 혼란스러움과 그걸 극복하는 과정을 글로 썼을 때, 누군가에게 작은 불빛이 됐던 것처럼 말이다. 



책을 처음 낼 때, 편집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책을 그냥 암 투병기 정도로만 여기지 마세요. 이 안에 육아에 대한 고민도 있고 글쓰기를 통해 나를 치유했던 경험도 있으니 선혜씨의 여러 가지 모습이 들어있는 거예요. 이 첫 책이 나무의 기둥이라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책은 가지가 될 거예요. 그렇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첫 책에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세요.” 


희미하게 느껴졌던 편집자님의 조언이 두 번째 책을 쓰려고 보니 선명하게 이해된다. 나는 암환우였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주부였고, 나를 돌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 세 가지 모습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넣은 덕분에 앞으로 육아에 관한 책도 쓸 수 있고, 글쓰기에 대한 책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첫 책은 중요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 

오히려 첫 책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면 두 번째 책은 절대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야만 계속 쓸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이번 책도 다행히 완벽하지 않아서 세 번째 책을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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