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 무업, 갭이어, 안식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식년을 보내기로 정하고 나자 갑자기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주어졌다. 회사 다닐 때는 '딱 일주일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 가고 싶다, 한가한 카페에서 책 읽고 싶다' 등 시간만 주어진다면 잘 쉬고 잘 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유로워지자 오히려 멍한 시간이 이어졌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데드라인이 정해진 업무도 없어지니 무한대로 풀어져버렸다. 나만의 의식, 나를 지키는 작은 습관들이 필요했다.
리추얼 라이프는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을 뜻하는 '리추얼(Ritual)'과 일상을 뜻하는 '라이프(Life)'가 합쳐진 말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어진 시간을 좀 더 풍성하고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선 작아도 소중한 나만의 리추얼이 필요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 책 2페이지, 5분 명상, 식물에 물 주기 등 소소하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으면 된다. 일상에서 얻는 작은 성취감과 좋은 습관은 나의 오늘을 잘 보내고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하며 뻔한 몇 가지 방법을 공유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시작하자'
무언가 규칙적으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로 시작한다면 조금은 쉬울 것이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뭉글뭉글 구름이 적당히 있는 파란 하늘, 매일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소울 푸드 치킨과 떡볶이, 내 친구들인 드라마와 예능들, 달달한 디저트에 향기롭게 내린 커피가 기다리는 카페, 간편하고 안락한 홈카페, 뻥 뚫린 호수공원 따라 산책하기, 스르르 낮잠 자기, 좋은 순간들 사진으로 기록하기, 야구장에서 즐기는 맥주와 시원한 바람 등등.(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매일 조금씩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리추얼로 잡아도 좋겠다.)
이 중에서 '카페 매일 즐기기'를 리추얼의 하나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카페 투어를 좋아하기에 카페 매일 기로 정했다. 백수라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보니 자연스레 집 밖의 새로운 공간을 찾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다. 카페 공간에서 커피맛을 탐험하고 기분도 환기시키기로 한다. 집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홈카페도 좋다. 입뿐만 아니라 마음도 달달 해지는 시간이니까. 이 시간은 책이나 글을 쓰며 집중도를 높여보기로 한다.
'쉽게 접근하여 할 수 있는 걸 하자'
습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자연스럽고 자동적으로 안될 수 있기에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적은 것, 접근성이 좋은 리추얼을 선택하는 게 좋다. 눈 뜨자마자 유혹의 틈이 생기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나가는 것. 나는 바로 일어나자마자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오는 것으로 정했다. 정확히는 호수공원을 살짝 찍고 온다는 표현이 맞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화든 샌들이든 신고 나간다. 호수공원 한 바퀴를 다 도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릴 테지만 나는 나만의 루트로 걷고 온다. 집에서 호수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호수공원 내에서는 대략 20분 정도로 짧게 둘러보며 걷는다. 총 35-45분 정도. 그 정도도 충분히 상쾌하다. 호수공원 한 바퀴를 다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가기 전부터 망설여져 아예 출발을 안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잠깐 호수공원에 발만 찍고, 맛만 보고 오자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막상 가서 초록 가득한 나무들과 아름다운 호수의 윤슬을 마주하면 조금 더 걷고 오면 될 테니 이득이다.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
리추얼의 의미답게 규칙적으로 할 장치를 세팅해놓으면 도움이 된다. 챌린저스, 밑미, 그로우 등 요즘에는 규칙적인 습관 실천을 돕는 플랫폼이 많다. 챌린저스는 참가비를 내고 자신의 미션 인증샷을 올리면 목표 달성률에 따라 환급받는 형태이고, 밑미는 취향에 맞는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리추얼 메이커가 프로그램을 이끌며 진행된다. 나도 최근 규칙적인 장치를 하나 세팅했다.
'니트컴퍼니'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니트컴퍼니는 건물, 월급, 사업자는 없지만 회사 놀이를 통해 무업기간을 전환의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가상의 회사다. 무업의 상태지만 모두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된다. 보통의 직장인처럼 주 5일, 온라인으로 출퇴근과 업무 인증을 올려야 한다. 월차도 가능하고 업무도 내가 정한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이루고자 하는 어떤 것이든 업무로 설정하면 된다. 내가 정한 업무는 '오늘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기'와 '5 천보 걷기'다. 덕분에 루틴이 만들어졌다. 주 5회 규칙적으로 실천 중이다.
'매월 디깅 리스트를 작성해보자'
리추얼로 반복된 습관을 유지하게 되면 매월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연 초에 세우는 의지 불타는 목표는 새해와 설날이 지나고 나면 흐지부지되니까 매월 구체적으로 디깅 하고자 하는 목록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자체가 하나의 리추얼이 되는 것. 한 달 내에 할 수 있는 일로 작은 목표니 부담도 적고 실천력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안 가본 동네 가보기', '미뤄둔 필름 카메라 인화하기', '안 먹어본 카페 메뉴 먹어보기'처럼 쉬운 목표로 설정한다.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 한 내용을 체크하며 지워갈 때의 작은 희열도 느낄 수 있다. 목록 중에서 습관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매일의 리추얼로 만들어도 좋다. 이렇게 쌓인 디깅 목록은 뾰족한 나만의 취향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게 루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작고 소중한 나만의 리추얼을 통해 조금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이, 더 빛나는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