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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작가 May 19. 2024

독립의 오해

글.그림 김유미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가 언제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이사 때라 답한다. 매 학기 기숙사부터 졸업 후 월·전세 계약기간마다 자취방을 옮겼으니 이사 다닌 동네가 제법 된다. 신촌에서 송파까지... 강북과 강남을 오간 부산 소녀의 좌충우돌 이사 분투기가 동네 곳곳에 묻어 있다.


사회초년생 때의 일이다. 퇴근하고 이삿짐을 나르는 일정이었는데, 전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일 돌려준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갈 집에 보증금을 줘야지 짐을 옮길 수가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통화를 들은 직장 상사가 얼마가 필요하냐고 했다. 마침 오백만 원이 있으니 얼른 입금하고 퇴근도 하랬다. 비가 오는 저녁이었다.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뭐가 그리 서럽던지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다른 이사 날이었다. 아침 일찍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지나던 오토바이가 멈추더니 이사가는 건지 온 건지 물었다. 이사를 왔다고 하니, 오늘 신고받은 것이 없다며 도시가스 전입신고를 했는지 물었다. 도시가스 점검원이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본 아저씨는 TV, 인터넷 이전도 안 했겠다며 신고할 내용들을 알려줬다. 물론 가스 신고도 현장에서 바로 처리해 줬다. 서울에선 눈 뜨고 코 베여간다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사 때면 늘 친구들이 함께했다. 다들 지방에서 온 터라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거들었다.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동생이 도와주러 온 적도 있었다. 나도 참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았다. 지금의 서울살이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여전히 이사는 고달프지만, 이젠 실수 없이 척척 해낸다. 보증금은 은행의 힘을 빌려 먼저 준비해 둔다. 가스 신고는 물론 폐기물 처리까지 사전접수는 기본이다. 더 이상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다. 이삿짐센터를 예약했다. 다 같이 고생하고 짜장면을 먹는 낭만은 사라졌지만, 몸이 편해졌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신세를 지면 그게 다 빚이라고. 그렇게 자란 탓일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마냥 감사하기보다는 미안하고 불편했다. 사실 받는 것이 서투니 주는 일도 어려웠다. 성의를 어떻게 표현해야 상대 마음에 들지 고민되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느니 애초에 도움을 받지 않는 게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내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 했다. 부탁하고 신세 지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거절당하는 순간이 민망하기도 했다.


전시 준비할 때도 그랬다. 대망의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오롯이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친한 디자이너들을 두고 어설픈 포토샵 실력으로 포스터와 엽서를 직접 만들었다. 그 와중에 본 건 있어서 미술관처럼 작가 노트를 벽에 장식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디자인팀이 시트지 작업하는 걸 어깨너머로 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주말에 연락하기가 미안해 그냥 검색해 보고 알아서 주문했다. 주변을 귀찮게 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내가 제법 멋져 보였다.


혼자가 아니야3/45.5x45.5cm/oil on canvas/2022, 김유미 작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한 개인전 하루 전날, 대관 장소를 꾸미던 중에 결국 시트지가 말썽을 부렸다. 주문할 때 시트지 컷팅작업을 놓친 것이다. 관장님이 나섰다. 다른 작가들도 이랬다며 하나씩 떼면 된다고 했다. 사전에 말해주지 못한 본인 잘못이라 했다. 관장님은 바닥에 앉은 채 시트지 글자 하나하나를 떼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는 전시설치 전문 기사님이 작품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어떤지 봐달라고 했다. 내가 해둔 구성안이 있었지만, 그는 좀 더 좋은 위치로 제안해 줬다. 관람객의 동선과 시선 등 초보 작가가 놓친 포인트를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정작 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고생하는 모습에 커피라도 사 오고 싶은데 빨리 시트지를 붙여야 하니 애가 탔다. 때마침 내 연차의 이유를 눈치챈 직장동료가 퇴근길에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 왔다. 모두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그들은 전시를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한 팀이었다. 엄마가 속삭였다. “미야, 받으면 다 빚이다.” 그제야 내가 대답했다. “엄마, 제가 잘 갚아 볼게요.” 


독립적인 사람이라면 상대가 도움을 줄 때 감사히 받을 줄 알고, 누군가 내가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빚을 지면 갚으면 된다. 빚을 잘 갚으면 그 관계는 빛이 될 테다. 스스로 독립적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고립을 자처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았던 이유가 혼자서 하는 일이라 그랬다. 가만히 앉아 홀로 그림만 그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었다. 작가 생활 중에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작업하다 보면 제삼자가 한 번씩 그 과정을 봐줬으면 하는 때가 있다. 달을 좀 더 크게 할지 혹은 다른 무언가를 그리면 좋을지 네 살배기 조카에게 물어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힌다. 액자를 맞추고 그것을 포장하고 갤러리로 운반해야 한다. 이럴 때 같이 옮겨주는 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서 해 보겠다고 택시를 이용하고 카트에 작품을 싣고 다녀도 봤지만, 자칫 액자에 손상이 가거나 내가 다치기도 했다. 결국 차가 있는 가까운 이를 찾았다. 흔쾌히 기사가 되어 준 친구는 전시작들을 함께 들어주고 때론 디스플레이에도 참여했다. 부탁도 자꾸 하니 연습이 되었다. 어느새 작은 전시에는 친구와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일을 마치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는 나의 화풍이나 갤러리 분위기 등 내가 보지 못한 부분들을 이야기해 줬다. 우리에게 새로운 수다거리가 더해졌다.


개인전과 같이 작품이 많을 때는 미술품 운송 전문업체에 맡긴다. 다양한 작가를 만나고 전국의 전시장을 다니는 운송기사님을 통해 국내 미술시장 현황을 전해 듣는다. 기사님의 연애사는 덤이다. 갤러리에서 만나는 관장님과 관람객이 주는 피드백은 어디서도 듣지 못할 값진 수업이 된다. 거기에 더해지는 응원은 계속해서 그리게 하는 힘이 된다. 이들은 작업실에 갇혀 지내는 나를 세상과 연결해 준다.


온종일 그림을 그리다 몰입의 순간에 빠져나오면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외로움인지 심심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 핸드폰이 울린다.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작업 중이면 잠깐 차 한 잔 마시고 가겠다는 상대의 배려에 내 마음은 봄기운으로 가득 차오른다. 차도 마시고 떡볶이도 먹고, 와인도 마시자고 되려 내가 친구를 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김유미 
일과를 끝낸 저녁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만큼 글짓기도 좋아한다. 온종일 그리고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쓴 책으로는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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