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시Chalsea Dec 22. 2023

김장 3000 포기한 썰

2023 마지막 '축제'라 쓰고, 울력(구름 운雲)이라고 읽는다


김장을 마치고 나서도 2주 이상 지난 지금에야 글을 쓴다.



김장 바로 다음날 A형 독감에 걸려서 일주일 격리.

그다음에는 김장 뒷정리, 

동안거 준비와 인도 성지순례 준비로 바빴다.

그리고 지금은 동안거 - 내일부터 명상수련에 들어간다.



#소소하지 #않은 #농사이야기




7월 말, 배추 1만 주 가까이 모종을 심었다.

여름에 너무 더운데, 모종을 키우는 하우스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모종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50%가량 살아서 밭에 심었다.

모종을 보시해 주신 분도 계셔서, 

밭에는 약 6천 포기를 심었다.




가을철 비가 오지 않고, 

많이 더운 시기에 진딧물 폭탄을 맞았다.

그래서 밭에는 약 2300 포기 가량이 살아남았다.




배추는 밭 두 군데에 나눠서 심었는데, 

산 등성이에 있는 밭에

고라니가 배추 맛을 알아서

매일 같이 울타리를 뛰어넘어와 배추를 먹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건 좋았으나,

기온이 예년보다 빨리 (11월 중순부터) 너무 많이 내려가

배추도 얼어버리는 기온이었다.

그래서 얇은 이불용도로 천을 덮어주었다.


다사다난한 배추 농사의 마지막은 김장이다.






김장.

절에 들어오기 전에는 김치는 사 먹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장은 교과서에서나 보는, 

TV에서나 보는 일이었다.



근데 그런 김장을 절에 들어와서 한 지도 

이제 어언 8-9년이 됐다.




올해 김장은 우리가 농사지은 배추 2천 포기 가량과

주변 마을에서 받은 배추 1천 포기.

총합 3,300 포기 가량의 배추를 김장하게 됐다.





유튜브에 보니, 

절에서는 5천 포기, 1만 포기 김장을 하는 것이 

예삿일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위안이 좀 됐다.



내가 있는 수행공동체에서 

모든 일은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3,300 포기 김장을 하는데, 

수확부터 김장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뒷정리까지는 이주 가까이 걸렸다.

봉사자는 약 420여 명 이상이 다녀갔다.




배추를 수확한다.



잘 갈아놓은 칼로 배추 밑동을 자른다.

배추는 컨티박스에 담아서 나른다.

트럭에 싣는다.



산등성이에 있는 배추 밭에서는 

동선을 줄인다고 미끄럼틀을 만들었다.

신박한 아이디어.






배추를 쌓는다.

배추 수확만도 며칠 걸리니, 덮어놓는다.




수영풀장을 준비한다.

#대망의 김장날




배추 손질하고, 절이는 날이다.

수영풀장이 아니라 김장 절임풀장이다.



배추를 절반으로 자르고, 밑동에 금을 낸다.

배추를 쌓는다.

소금을 친다.

원칙적으로는 17도의 냉기가 없는 물을 부어야 하지만, 

물 양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그냥 물을 부었다.


근데 배추 양에 비해 풀장이 너무 작았다.

옆에 임시로 추가 풀장을 만들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이다. 배추를 뒤집는다.

가슴장화(일명 우주복)를 입고 절임풀장에 들어간다. 

임시 풀장으로 배추를 옮기고, 소금물을 넣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임시로 만든 풀장이 터져버렸다.



급히 배추를 다시 원 풀장으로 옮겼다.

원 풀장에 초과하는 분량은 고무 대야 통통이 넣는다.

저녁 7시에 나와서, 8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15명 넘게 밤 10시까지 작업을 겨우 마친다.




#다음날




절임풀장의 배추를 건진다.




배추를 씻는다.

3단 씻기로, 흐르는 물에 씻는다.


씻은 배추는 비닐 씌운 팔레트에 적재해 물을 뺀다.





물이 빠진 배추는 양념을 치댄다.



사실 배추를 손질하고, 절이고, 씻고, 물 빼는 동안 

계속 양념 작업은 한편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치댄 김치는 김치통에 넣으면,

혹은 비닐에 넣어서 김칫독에 넣으면

김치 완성!





배추 양이 많아서

절이고, 씻고, 물 빼고, 치대는 작업을 3일 진행했다.


그래서 400여 명이 모자이크 역할을 하면서,

1년 동안 먹을 김장 김치를 완성한다.












김장을 마치면, 그 뒷정리가 있다.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물건을 원상 복귀한다.

최대한 빨리.

김장 마지막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재바르게 물품 뒷정리를 한다.

물건을 씻고, 널고, 말리고.

천만다행으로 김장을 다 마친 다음날 비 예보가 있었다.

김장 중에 비가 왔더라면, 

참 난감했을 텐데.






다음날 눈을 떴는데, 온몸이 욱신 거렸다.

피로인가 했는데, 심해서 병원에 갔다.

독감이 유행한다길래 혹시나 해서 검사를 했더니 

A형 독감이란다.

전염성 있는.



바로 격리에 들어갔다.

마침 똑같이 독감에 걸린 동료

(공동체에서는 도반이라고 부른다)와 

함께 격리를 들어갔다.

공동체 생활에 1-2인실 생활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푹,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쉬고

일주일을 보냈다.

참 아팠는데, 덕분에 잘도 쉬었다.





일주일 만에 나와서 

못다 한 김장 뒷정리와 밭 뒷정리를 한다.

엉덩이 방석을 정리하고,

밭에서 수거한 잡초매트를 갠다.

사용했던 팔레트를 정리한다.







수련원이 다시 원모습을 찾았다.

개운하다.



2023년도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2024년 1월에는 인도 성지순례에 간다.

2020년 코로나 전에 순례자로 참가했다가 

3주 가까이 기침감기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인도의 날씨에 학을 뗐는데,

이번에는 스텝 역할로 가게 됐다.

500여 명의 순례자들을 지원하는 스텝.



약 1달 동안 농장을 비우고,

서울, 그리고 인도에 다녀올 예정이다.

인도에서의 여정도 나중에 글로 남길 수 있길.





↓친언니의 일상을 보고 싶다면?�

https://brunch.co.kr/@hannnn/29



�친언니의 폐교 나들이가 보고 싶다면?�

https://brunch.co.kr/@hannnn/7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와 환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출가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