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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디 Dec 11. 2023

회사 다닌 지 3,284일 차

언니 이야기 | 스타트업 다니는 30대의 여느 일상

오늘은 비구니 동생과 다른 하루 일과를 써보려고 한다.




난 스타트업 상품기획자다. 생활용품을 맡다가 최근 화장품으로 전향했다.

'나 PM이야'라고 하면 사람들은 IT업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우리 회사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제조업 분야에 있다.

그렇다면 제조업의 PM은 무엇을 하고 지내는가?




6:00

오늘은 6시에 일어났다.

여유가 되면 아침 러닝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추워서 안 했다.

30분 더 뒹굴거렸다.



7:30

7시 반에 출근했다.

일찍 출근하는 건 10년 차 들어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에 만든 습관이다.

모닝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나를 위한 작은 사치.

 


7:40

커피를 들고 출근한 후 11시까지 고요히 내 업무를 처리한다.

우리 회사는 자율 출퇴근제여서 오전엔 사람이 거의 없다.

누가 출근해서 돌아보면 다 30대들이다. (40대는 우리 회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전은 오롯이 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만의 작은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위잉 위잉 사무실 히터 소리와 타닥타닥 내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사무실.

이 고요한 순간만큼은 일을 하고 싶은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오전엔 주로 나 혼자해야 하는 고민들을 한다.

내년도 목표 설정을 위한 데이터를 조금 찾아본다던가,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새로운 카테고리에 진출하면 얼마나 임팩트가 있을지,

방향이 안 보이면서도 괜히 전략을 세워보는 척한다.



11:00

11시가 되면 간단하게 팀 회의를 한다.

음.. 오늘의 온도, 습도, 기운을 봤을 때 팀원 하나가 또 지각할 것 같다.

태연하게 다른 팀원들의 업무 진행상황을 체크한다.


월요일은 지난주의 마일스톤을 체크하고,

새로운 일주일의 마일스톤을 세우는 날이다.

팀원들은 업무에 적응할수록 엄청난 리스트의 업무를 들고 온다.

다시 돌려보낸다.

이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선순위로 다시 쳐내와.



11:30

팀 미팅이 끝나면 11시 반.

지각한 팀원과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지각한 직원에게 잔소리 한 번 해주고,

넌 다른 회사 이직하긴 글렀어.

오늘은 새로운 팀원과의 런치챗.

법카로 맛있는 갈비찜을 먹으러 간다.



13:30

점심 먹고 들어오면 1시 반 정도다.

이제부턴 거의 메신저(슬랙)와 메일, 미팅만 한다.


거래업체에 최종 디자인 데이터를 보내고,

아니, 인쇄 데이터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생산 일정이 안 잡혔나요?

이에 따른 출시 일정을 티키타카를 하다가,

아니, 발주서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생산 일정이 안 잡혔나요?

출시 직전인 제품의 상세페이지 작성을 해본다.

아니, 출시할 제품이 이렇게 많아? 이거 언제 다 작성해....

하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이 다 작성해 낸다.


그러다 오늘 거래처 하나가 도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머리가 아파온다.



17:30

하지만 오늘은 왠지 일찍 퇴근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5시 반에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만은 운동을 가야겠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는 습관도 이대론 죽을 것 같아 생긴 습관이다.

난 칼퇴는 "워라밸이 무너져본 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꼰대다.

이래 봬도 밤낮없이 일하다가 혈압 180까지 오르고, 실신까지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난 오늘 일찍 퇴근을 했다.



18:45

일주일에 4번 아쉬탕가 요가 마이솔 클래스를 듣는다.


마이솔에선 내 호흡에 따라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 시간 속에는 나만 아는 미미한 숙달이 있으며, 좌절이 있다.

수업에 잘 빠지기도 하고, 유연하지도 않지만, 요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조촐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20:30

따뜻한 집에 돌아오니, 노곤노곤하다.

나만의 집에서 음악을 틀고, 느긋하게 씻고 나온다.

배고프진 않아 그릭요구르트에 샤인머스킷 몇 알 넣어 먹고 저녁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

매일 같으면서도 다른 일상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번아웃을 느끼고 특별함을 찾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행복임을 이젠 안다.


오늘은 내 생애 단 한 번 밖에 없는 2023년 12월 11일.

평범한 하루에 순간순간 집중하면,

하나도 같은 날이 없다.



▼ 평범하지만 아주 다른 비구니 동생의 일상 ▼

https://brunch.co.kr/@hhy134/12


▼ 동생의 일상에 놀러 간 특별한 하루 ▼

https://brunch.co.kr/@hannn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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