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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처음 시작만 어렵다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나이가 먹고 있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더 많이 들지만 여전히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엄마는 아파도 외롭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모르는 세상을 알고 싶으면 책으로 배우라고 하시면서 많은 책들을 사주셨고 학습지 선생님들도 자주 불러 주셨다.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집에 있으면서도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글은 친구가 없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큰 세상을 알려주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엄마의 큰 노력으로 만들어준 나만의 취미 생활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많은 책들을 사주고, 가정 방문 선생님을 불러주었던 건 우리 집 환경이 부유해졌거나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모든 건 다 빚이었지만 엄마는 결코 배움을 멀리하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중학교 반배치 고사 이후로 학교를 관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나이였던 16살이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무려 평생회원이라는 명칭으로 된 평생 반으로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에도 정식으로 공부를 하진 않았기에 여전히 강의는 소귀에 경 읽기처럼 한순간에 잊어지는 내용들이었다. 결국 인터넷 강의는 몇 편 보지도 않은 채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나에겐 잠시 다녔던 초등학교지만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우리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만 달랐고, 사람들이 자매로 착각할 만큼 외모도 닮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친구는 비록 중학교는 같이 다니지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집에 들러서 나와 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친구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고등학교 이후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간 친구와 자주 얼굴을 보진 못하고 있어도 다시 만나도 늘 어색함은 없는 그런 친구다. 당시 친구는 처음 내가 시험을 본다는 말에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프린터가 없었던 우리 집에 자신의 집 프린터 기계를 낑낑거리며 들고 와서 함께 요점정리를 뽑아주기도 하였다. 


 열여섯, 여름에 처음 보았던 시험은 안타깝게 떨어졌었다. 그 무렵 친구는 타 지역 고등학교를 입시 준비하였고, 우리는 그해 겨울 헤어지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올 무렵 나는 친구가 뽑아주었던 요점정리를 가지고 다시 시험을 보러 시험장을 향했다. 

 그해 중학교 검정고시를 붙고,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도 별 탈 없이 합격할 수 있었다. 

검정고시를 붙고 나서 대학이라는 걸 가보려고 했다. 중고등학교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간단하지는 않았다. 근처 대학의 면접이라는 걸 그 당시 처음 경험했기에 무척 떨렸는데 “학교생활은 혼자 할 수 있겠어요?”라는 물음에 솔직히 엄마가 없다면 불가능하기에 대답을 못 했었다. 면접을 보고 나서 학교를 다니느냐, 사이버 대학교를 인터넷으로 다닐 거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해보다가 나는 엄마의 도움 없이 학업을 이을 수 있던 사이버 대학교를 택하여 많은 공부를 또다시 혼자만의 세상에서 배우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를 편견 없이 키우시며 세상에 외면받지 않기를 원하셨다. 동생이 고등학교 졸업 후, 나도 사이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빠와 엄마는 갑작스럽게 운전면허를 보자고 제안했었다. 나중에 엄마 아빠가 없다면 나에게 발이 되어주는 건 자동차뿐이라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에 동의하는 나도 갑작스러운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정했었다.

 당일에 보러 간 필기시험은 손쉽게 합격하였고, 도로주행이 남아 있었다. 장애인은 특수차량을 이용하여 도로주행을 해야 했기에 일반 자동차학원이 아닌 장애인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 기관 면허장에서 시험을 봐야 했다. 운전연수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운전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신청을 해놓으면 기간에 맞춰 연수해주시는 선생님이 서울에서 차량을 가지고 내려와 도로주행을 연습시켜 주신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하루 정해진 시간만큼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운전연수를 할 때에 하루는 이런 날이 있었다. 내가 연수를 받는 차량은 장애인 차량으로 개조가 되어있고 차량 뒤 유리에는 ‘장애인 운전 연습차량’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낯선 핸들을 잡고 유턴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느리게 유턴을 했는데 뒤에 있던 차량이 연신 빵빵거리며 창문을 열고 “장애인이면 집구석에 있을 것이지. 왜 나와서 민폐야?”라고 고함치며 말했다.


장애인을 떠나 운전연습을 받다 보면 초보운전자에게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분의 말대로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와서 생긴 문제와는 별개였다.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이런 일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면 상처받지 말자라고 늘 되뇌지만 생각처럼 마음이 되진 않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내 갈 길만 잘 가요. 불만 있는 사람은 어디에든 불만이 있어요.

운전연수를 해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불만이 많은 사람에게 내가 보였을 뿐 내가 잘 못한 건 아니었다. 내가 아니었어도 그 사람은 분명 어디서든 불만을 표했을 것이다.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대 내가 가야 할 길은 잃어버리지 말자. 다른 이들의 말에 덜컥 겁을 먹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이다.


 일주일 동안 운전연수를 하는 동안 주위에서 들리던 빵빵거리는 클락션 소리가 더 이상 나에게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면허를 순조롭게 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처음 갖게 된 자격증 같은 거였다. 남에게 듣는 소리가 무서워 포기했다면 난 여전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모든지 도전해보라고 하신다. 그것을 할 수 있고, 없고를 생각하기 전에 도전해 본다면 어떤 결과든 나올 것이라고,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처음 시작만 어려울 뿐 끝은 항상 있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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