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면 우리 집에서는 해야 되는 일이 있다.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동생에게 옷가지며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는 일이었다. 옷장을 열어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옷들을 꺼내어 상자에 옮겨 담았다. 겨울이 다가올 무렵 옷을 담다 보면 무채색 계열의 옷이 상자를 가득 채우고 싱그러운 봄이 다가올 무렵에는 화사한 파스텔 톤의 옷들이 상자를 채웠다. 갈색 네모난 상자에는 계절이 담긴다.
요즘은 하루 전에 택배를 접수하면 다음날이면 집 앞까지 택배를 찾으러 와주신다. 택배를 직접 들고나가서 보내기 어려운 나에게는 너무 좋은 시스템이었다. 택배를 부를 때 가끔 고민을 한다. 무게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때 이것이 중형인지, 대형인지 무게는 5kg 이상인지 크기는 120cm가 되는지, 안되는지 생각보다 확인해야 되는 게 많았다. 간혹 큰 택배는 우체국에서 방문 수거해가도 발송되지 않는 크기라며 다시 가져다 놓곤 했다. 천 원, 이천 원 차이는 택배 보낼 때면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시간 지정하는 택배를 고를 때 추가되는 금액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굳이 집에 있는데 시간 지정해야겠어? 어차피 시골이니깐 하루면 올걸. 그렇게 생각하고 일반 예약 택배를 예약하곤 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대부분 예약한 다음날 택배를 찾으러 오기에 커다란 택배 박스를 집 한쪽에 치워놓았다. 택배 아저씨가 오시면 언제든 줄 수 있는 준비 정도.
택배 아저씨보다 택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빠였다.
“아빠가 보내도 되는데”
아빠는 집 한쪽에 쌓여 있는 박스가 영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아빠는 하는 일도 굉장히 많고 바쁘다. 온 집 안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에서 아빠 손길이 닿지 않은 일들은 하나도 없었다. 성격도 급한 편이었다. 말이 나오는 즉시 실행해야 했고 바로 결론이 나와야 했다. 언제나 가족이 불편한 거보다 자신이 불편한 걸 택하시고, 힘든 일과 궂은일은 물론, 모든 걸 해주시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 여겨서 몰랐는데 막상 크면서 아빠가 모든 걸 해주시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가 있었고, 아빠는 혼자서 많은 짐을 짊어지려고 하시는 게 이제야 눈에 보였다. 한 번은 모든지 아빠가 할게, 아빠한테 말해라고 하는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생 같이 사는 것도 아니잖아.”
인생은 누구에게나 이별의 시간은 다가온다. 평생 함께 할 것 같았던 꽃순이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우리도 그렇다. 부모 자식 간에도 언젠가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자연적으로 시간이 흘러 헤어짐이 오는 건 행운일 정도로 세상엔 갑작스러운 이별 또한 때때로 우리를 기다린다.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을 찾으며 꼭 분가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독립을 한다. 부모님에게 의존만 하고 지내던 나는 그 시기를 놓쳤다. 나에게는 아빠가, 엄마가 만들어주는 세상이 곧 나의 세상의 전부였다. 의존만 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혼자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심 나의 말에 서운함을 아빠는 감추지 못하셨지만 모른 척했다.
예약해 놓은 택배가 하루를 지나도 찾으러 오시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아직도 집 안에 있는 택배 상자를 보고 아빠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성격 급한 아빠에게는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내가 영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지나다니면서 택배 상자를 볼 때마다 왜 아빠가 보내면 되는데 이런 걸 왜 예약하냐고 물으셨다.
나도 알고 있다. 아빠가 택배를 보내주면 그날 바로 택배가 보내지고, 다음날이면 동생에게까지 도착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택배를 보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 더 속상했다. 애초에 아프지 않았으면 누구에 손을 빌리지 않고 쉽게, 쉽게 내가 직접 택배를 바로 보낼 수 있지 않았겠는가. 시간을 지정하는 홈 택배를 예약하지 않은 나를 탓하고, 이틀이 되어도 소식 없는 예약 택배 기사 아저씨를 탓하고 싶었다. 이미 다시 지정 홈서비스로 예약하기에도 시간이 더 걸리고, 아빠의 손을 빌리기도 싶지 않았던 나는 고집스럽게 택배 예약을 취소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택배를 예약한 이유는 나의 홀로서기를 준비한다는 비장한 포장보다는 아빠의 일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하러 나가시면서 택배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삼일 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택배 수거는 이뤄졌다. 그날 저녁 택배가 사라진 공간을 보고 아빠는 여전히 이런 거 이용하지 말고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번에 택배 보낼 일이 또 생겨도 이번처럼 아빠의 손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고 말하는 아빠에게도 쉼은 필요하기에.
아빠 대신 택배를 보내는 건 고작이지만, 아빠에게 쉼을 선물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쉬는 게 싫은 사람은 없다. 다만 쉼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할 뿐. 아빠에게 쉼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아빠가 대신 모든 걸 해주는 세상이 아닌 나 혼자 온전히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