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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9. 2022

공감받고 싶은 날

집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한정된다. 가족 외 부모님의 지인 정도뿐.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상대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범위가 정해진다. 친구와 어른을 대할 때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원래의 성격을 모두 표현하고 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릴 적만 하여도 나는 꽤 활발하고 감정을 곧잘 표현하는 편이었다. 소통하는 사람의 폭이 좁아질수록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차츰 감정을 억누르는 게 익숙해질수록 표현에 메마른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다. 


 얼마 전 심리상담사를 직업으로 하는 분과 우연히 짧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심리 상담사의 직업 특성상 그는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받는다고 하였다. 모든 고민은 늘 감정을 가득 담고 있어 상담은 항상 힘들다고 말하였다. 다만 이야기를 펼치는 환자의 고민이 저게 울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은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내가 생각했던 정신과나 심리 상담사라든지 상담을 주 업무로 보시는 분들은 남의 이야기에 잘 공감하고 제법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 쯤으로 여겼었다. 나의 의아함을 알아차린 그가 말했다.


“매 순간 공감할 순 없잖아요”

딱딱한 음성으로 무미건조한 대답을 한 뒤 덧붙였다.

“내가 공감하는 순간 상담은 공평성을 잃어요.”


직업은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 부분을 무뎌지게 한다. 비슷한 감정, 비슷한 우울감을 매일 반복해서 겪는다면 늘 공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공평성을 잃은 상담사는 제대로 환자의 심리를 판단할 수 없게 되니 공감하지 못하는 차가운 마음을 가진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심리 상담사였다.


 주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담사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고민 상담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나는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답변을 해주는 편은 아니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상대와 마주하면 애써 감춰둔 감정에 솔직해졌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좋은 상담사와 달리 고민하는 이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고 함께 감정적으로 고민을 받아들이곤 했다. 결과적으론 고민하는 사람의 고민을 덜어주진 못했던 거 같다.


“그래도 좋지 않아요? 가끔 공감받고 싶은 날엔.”


딱딱한 음성과 달리 따뜻한 웃음이 보였다.

친구가 필요한 이유와 같은 거라고 했다. 완벽한 해답을 찾기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의 작은 이야기에 공감하고 웃고,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위로가 해답보다 마음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고.


“당신도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너무 자기를 포장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은연중 나는 부모님에게, 언니에게, 동생에게, 혹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원래의 모습을 숨겨오고 있었다. 활발한 나를 보며 집안에만 있는 걸 안타까워하거나 속상해하는 그들은  침착하고 차분한 소란스럽지 않은 성격의 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가 되어 원래의 감정을 억누르는 게 맞는 거라고 믿었다. 


 나를 포장하는 건 모두에게 좋은 거라 믿었지만 정작 나는 가장 중요한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심리상담사인 그처럼 해답을 찾아 생각을 정리해주는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고민에 솔직한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기 전에 누군가의 우울함에 흠뻑 젖은 나의 공감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르니 감정적인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감정적인 내가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주는 날이 오기 전까지 감정을 억누르기보단 누구보다 솔직하게, 감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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