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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28. 2022

E가 I가 되었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끼는 고독감을
엄청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중략)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드러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이다.

- 사이토 다카시,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몇 년 전만 해도 MBTI 검사를 했을 때 맨 앞이 E였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에서 업데이트 버전이 나왔다고 해서 다시 해봤더니 다른 것은 다 똑같은데 E가 I로 바뀌었다. 왜지? 싶어서 다시 해봐도 나는 I였다. E와 I의 차이는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고 찾느냐에 큰 차이가 있다. E는 외부에서 I는 내부에서 찾는다. 간혹 E와 I를 신체적 행동과 말투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는데 그것은 큰 오류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가령 유재석, 강호동 모두 밝고 비춰지는 모습은 타인 친화적인이나 실제 그들의 성향은 I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사실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늘 필요하기도 했다. 한 주는 업무상 또는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면 그다음 주는 집순이로 지냈던 것 같다. 본질은 I인데 사람들 속에서 E로 지낸 건지, 본질은 E이나 I의 휴식이 필요한 건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둘 다 모두가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와 엄정화가 나누는 대화에서 나의 이런 생각과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도덕경에서 본성에 따라서 사는 삶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맞는 삶이라는 거야. 화려한 거 좋아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걸 좋아하는 게 나의 본성인지, 자연에 묻혀서 봉사하는 게 본성인지 헷갈려 이제는" 

"난 그게 둘 다 너라고 생각해" 

"그럼 이제 맞는 건가? 하고 싶을 땐 나와서 하고 들어가고 싶을 땐 들어가고." 

"그거보다 더 좋은 게 어딨어?"


E건 I건 지난날 사람 속에서 깔깔대며 즐거워하는 것도 나이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혼자 있는 고독을 즐기는 것도 나이다. 문제는 이효리와 같이 어떤 것이 나의 본성인 것인지 잠시 헷갈릴 때이다. 둘 다 나임을 머리는 알고 있어도 지금 당장 어느 본성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말이다.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잠시 헷갈리는 순간이 있었다. 부모님과 친구를 모두 올려 보내고 정말 혼자 있는 시간이 주가 되다 보니 문득 외로움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깊은 외로움이었다. 평상시에 혼자 잘 놀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외로움으로 고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유독 밥 한 끼는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래서 카페를 통해 동행을 구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동행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몇 명의 동행을 만나 먹고 싶었던 점심 또는 저녁을 먹기도 하고 일정이 맞는 날이면 같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동행분들과의 시간은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동행과 맞지 않았다기보다는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렇게 함께 하게 된 그들과의 대화가 유익했지만, 내 체력과 에너지가 미처 따라주지를 못했다. 나는 이 당시 I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퇴사 제주행을 선택할 즈음부터 나는 혼자만의 에너지를 추구했었다. 순간의 외로움으로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혼자 여행을 다닐 때의 나는 E였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고 자극받는 것을 즐겼다. 그들과의 시간이 여행의 기록이었고 나의 경험 자산이었다. 내가 나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늘 그 시절의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고. 잠시 힘들었던 사회 밖으로 나와 쉬고 있으니 다시금 가득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을 거라고 스스로 착각했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간과했다. 신체적 나이와 무관하게 30대 초반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은 충만했던 그 시절에 머무르고 있었다. 여러 번 경력 이직을 했지만 회사에서 어쩌다 보니 늘 막내였고, 그 사회 속에서는 어리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맞는 말이지만 내가 나와 일치하지 않고 헷갈려하며 살고 있었다는 게 문제이다. '지금의 나이는 이렇게 살아야 돼'라는 인생 지침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인정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내가 에너지를 밖에서 채우고 싶은지, 안에서 채우고 싶은지 알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동행들과 시간을 마무리하고 깨달았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깊이 알아채지 못해 외로움을 느꼈다는 것을. 지금의 시간은 이후에 다시 E의 삶을 원할 풍요롭게 지내기 위한 시간이다. 이 둘의 본성은 각자가 지배하는 시간을 존중해줘야 조화롭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도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여 자아를 확립한 후에 다른 사람들과 유연하게 관계를 맺고 감정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라고. 지금의 나는 나의 세계에 집중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아낌없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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