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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산 Apr 02. 2024

연목구어(緣木求魚), 진심만이 왕도를 이루게 한다

문장 5. 양혜왕 상梁惠王 上1.7

문장 5


연목구어(緣木求魚), 진심만이 왕도를 이루게 한다


# 1.7


제선왕이 패권을 얻고 싶은 욕망을 담아 맹자에게 물었다.

“지난 시대 패자(霸者)였던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맹자는 부러 패자에 대해 모르는 듯 대답했다.

“공자의 무리는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후세에 전해지는 것도 없어서, 신이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야기하기를 계속 하라시면, 왕도에 관해 말해보겠습니다!“

“덕을 어느 정도 쌓아야 왕도가 가능합니까?”

“백성을 평안하게 하면 누구나 왕도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과인 같은 사람도 백성을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어떤 이유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장담하십니까?”

“신이 호흘이라는 신하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실 때, 소를 끌고 당하를 지나가는 자가 있었는데, 왕께서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물으시니, ‘장차 흔종(釁鐘, 종에 제물의 피를 바르는 의식)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했다지요? 왕께서 ‘그 소를 놓아주어라, 죄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며 그 벌벌 떠는 모습을 차마 못 견디겠다.’ 하셨습니다. 이에 소를 끌고가던 자가 ‘그러면 흔종의 의식도 함께 폐지할까요?’ 물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폐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답니다.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요?”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 왕도를 이루는 데 족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소값이 아까워한 것이라 여기지만, 신은 진실로 왕께서 소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나라가 비록 작지만, 내가 어찌 한 마리 소를 아까워하겠습니까? 죄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며 그 벌벌 떠는 모습을 견디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을 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께서 소를 아까워 했다고 여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작은 양으로 큰 소를 대신했으니, 그들이 그렇게 알 만도 하지요. 왕께서 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가련하셨으면서, 어찌 소와 양은 달리 보셨는지요?”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나는 재물이 아까워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듣고 보니 백성들이 내가 아까워서 그랬다고 할 만 합니다.”

“상심치 마십시오. 잘 살펴보면 거기에 바로 인을 베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왕께서 그리 하신 것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금수에 대하여, 그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그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우는 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을 잘 쓰는 것이 군자이고, 그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둡니다.”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경≫에서 이르길, ‘다른 사람이 지닌 마음을 내가 헤아려 아노라’라고 했는데, 선생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내가 한 일인데도 돌이켜볼 때 왜 그렇게 했는지 알 도리가 없더니, 선생께서 설명해주니, 내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왕도라는 것과 합치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엎드려 왕께 말하길, ‘내 힘은 삼천 근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새 깃털 하나를 들 수 없습니다. 내 눈은 가을 털갈이하는 새의 가는 터럭을 분명히 볼 수 있지만, 수레에 있는 땔감은 볼 수 없습니다’ 한다면, 왕께서는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니오.”

“지금 왕의 은혜는 금수에게까지 미칠 정도인데, 그 은혜의 공적이 백성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까닭은 진정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니 새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나뭇가지를 꺾는 종류의 것입니다. 자기 집 노인을 경로하여 그것이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자기 아이를 아이답게 아끼는 것이 남의 아이에게까지 미치게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운용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시경≫에서 말하길 ‘처자에게 모범이 되니, 그것이 형제에게 미치고, 나아가 온 나라에 퍼지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가족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사회 모든 곳으로 넓혀서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널리 펴나가면 세상을 보전하여 편안하게 할 수 있지만, 은혜를 널리 펴나가지 않으면 자기 처자조차 보전하여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옛 성현들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은 별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는 바를 미루어 잘 펴나갔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禽獸)에게까지 미치기에 충분한데도, 그 공적이 백성에게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저울에 달아본 연후라야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물건이 다 그러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더욱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잘 헤아려보십시오. 그런데 은혜를 베푸는 일을 먼저 하시지 않고,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군사와 신하들을 위태롭게 하고, 다른 나라 제후들과 원한을 맺은 연후라야 마음이 통쾌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어찌 그런 것을 통쾌하게 여기겠습니까? 나는 장차 내가 크게 원하는 바를 추구할 뿐입니다.”

“왕께서 크게 원하는 바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왕이 웃으면서 말하지 않았다.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이 입에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화려한 채색이 눈에 부족해서일까요, 아름다운 소리가 귀에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총애하는 신하들을 앞에서 마음껏 부리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그런 것들을 족히 공급해드릴 터이니, 왕께서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러시기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영토를 확장하고, 진 나라와 초 나라로 조공을 바치게 하여, 중원에서 맹주가 되고 사방의 이민족을 위무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 방법으로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나무에 기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심하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그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한다 해도, 후에 재앙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과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후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제선왕이 물어 말했다.1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齊宣王問曰: “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제선왕문왈: “제환진문지사가득문호?”

맹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중니(중니는 공자의 자)의 무리는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후세에 전해지는 것도 없어서, 신이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치지(以=已) 말라[無]하시면, 곧 왕도[王]를 말해보겠습니다!“2

孟子對曰: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 是以後世無傳焉, 臣未之聞也. 無以, 則王乎!” 맹자대왈: “중니지도무도환문지사자, 시이후세무전언, 신미지문야. 무이, 즉왕호!”

(왕이) 말했다. “덕이 어떠하여야만 왕도가 가능합니까?”

曰2: “德何如則可以王矣?” 왈: “덕하여즉가이왕의?”

(맹자가) 말했다. “백성을 평안하게 하면서(保) 왕도를 구현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曰: “保民而王, 莫之能禦也.” 왈: “보민이왕, 막지능어야.”

(왕이) 말했다. “과인 같은 사람도 백성을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까?”

曰: “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왈: “약과인자가이보민호재?”

(맹자가) 말했다. “가능합니다.”

曰: “可.” 왈: “가.”

(왕이) 말했다. “어떤 이유로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아십니까?”

曰: “何由知吾可也?” 왈: “하유지오가야?”

(맹자가) 말했다. “신이 호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실 때, 소를 끌고 당하를 지나가는 자가 있었는데, 왕께서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물으시니, 대답하여 ‘장차 흔종(釁鐘, 종에 제물의 피를 바르는 의식)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께서 ‘그 소를 놓아주어라, 내가 죄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며 그 벌벌 떠는 모습(觳觫)을 견디지 못하겠다.’ 하셨습니다. 이에 대답하여 ‘그러면 흔종의 의식도 함께 폐지할까요?’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 폐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요?”

曰: “臣聞之胡齕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曰: ‘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廢釁鐘與?’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왈: “신문지호흘왈, 왕좌어당상, 유견우이과당하자, 왕견지왈: ‘우하지?’ 대왈: ‘장이흔종.’ 왕왈: ‘사지, 오불인기곡속, 약무죄이취사지.’ 대왈: ‘연즉폐흔종여?’ 왈: ‘하가폐야? 이양역지.’ 불식유저?”

(왕이) 말했다. “있었습니다.”

曰: “有之.” 왈: “유지.”

(맹자가) 말했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왕도를 이루는 데 족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까워한(愛) 것이라 여기지만, 신은 진실로 왕께서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曰: “是心足以王矣. 百姓皆以王爲愛也, 臣固知王之不忍也.” 왈: “시심족이왕의. 백성개이왕위애야, 신고지왕지불인야.”

왕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여기는) 백성이 있겠군요. 제나라가 비록 작지만, 내가 어찌 한 마리 소를 아까워하겠습니까? 죄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며 그 벌벌 떠는 모습(觳觫)을 견디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을 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王曰: “然, 誠有百姓者. 齊國雖褊小, 吾何愛一牛? 卽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 故以羊易之也.” 왕왈: “연, 성유백성자. 제국수편소, 오하애일우? 즉불인기곡속, 고이양역지야.”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께서 소를 아까워 했다고 여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작은 것(양)으로 큰 것(소)을 대신했으니, 그들이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 죄 없이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가련하셨으면서, 어찌 소와 양은 달리 보셨는지요?”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 以小易大, 彼惡知之?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왈: “왕무이어백성지이왕위애야, 이소역대, 피오지지? 왕약은기무죄이취사지, 즉우양하택언?”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정말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는 그 재물이 아까워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듣고 보니) 백성들이 내가 아까워서 그랬다고 할 만합니다.”

王笑曰: “是誠何心哉?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 宜乎百姓之謂我愛也.” 왕소왈, 시성하심재? 아비애기재이역지이양야, 선호백성지위아애야.”

(맹자가) 말했다. “상심치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인을 베푸는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한 데 (이유가 있습니다.) 군자는 금수에 대하여, 그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그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우는) 소리를 듣고는 그 (가축의)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하는데, 그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둡니다.”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 是以君子遠庖廚也.” 왈: “무상야, 시내인술야, 경우미견양야. 군자지어금수야, 견기생불인견기사, 문기성불인식기육, 시이군자원포주야.”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경≫에서 이르길, ‘다른 사람이 지닌 마음을 내가 헤아려 아노라’라고 했는데, 부자(夫子, 옛날에 선비를 높여 부르는 말)를 두고 한 말입니다! 무릇 내가 일을 행하고도, 돌이켜 그 이유를 찾으려 해도 내 마음에 얻은 것이 없었는데, 선생께서 그것에 대해 말씀하시니, 내 마음이 환해집니다(戚戚). 이런 마음이 왕도라는 것과 합치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 予忖度之.’ 夫子之謂也! 夫我乃行之, 反而求之不得吾心, 夫子言之, 於我心有戚戚焉. 此心之所以合於王者, 何也?” 왕열왈: “≪시≫운: ‘타인유심, 여촌탁지.’ 부자지위야! 부아내행지, 반이구지부득오심, 부자언지, 어아심유척척언. 차심지소이합어왕자, 하야?”

(맹자가)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엎드려 왕께 말하길, ‘내 힘은 삼천 근[百鈞(백균, 1균=30근)]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새 깃털 하나를 들 수 없습니다; 내 눈은 가을 털갈이하는 새의 가는 터럭을 분명히 볼 수 있지만, 수레에 있는 땔감은 볼 수 없습니다’ 한다면, 왕께서는 그 말을 믿으시(許)겠습니까?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 而不足以擧一羽; 明足以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 則王許之乎?” 왈: “유복어왕자왈, ‘오력족이거백균, 이불족이거일우; 명족이찰추호지말, 이불견여신’, 즉왕허지호?”

(왕이) 말했다. “아니오.”

曰: “否.” 왈: “부.”

(맹자가 이어 말했다.) “지금 왕의 은혜는 금수에게까지 미치기에 충분한데도, 그 공적이 백성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까닭은 유독 무엇 때문입니까? 새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然則一羽之不擧爲不用力焉, 輿薪之不見爲不用明焉, 百姓之不見保爲不用恩焉. 故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 “금은족이급금수, 이공부지어백성자, 독하여? 연즉일우지불거위불용력언, 여신지불견위불용명언, 백성지불견보위불용은언. 고왕지불왕, 불위야, 비불능야.”

(왕이) 말했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何以異?” 왈: “불위자여불능자지형하이이?”

(맹자가) 말했다.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하면 그것은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는 할 수 없다’라고 하면,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나뭇가지를 꺾는 종류의 것입니다. 자기 집 노인을 경로하여 그것이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자기 아이를 아이답게 아끼는 것이 남의 아이에게까지 미치게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운용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시경≫에서 말하길 ‘처자에게 모범이 되니, 그것이 형제에게 미치고, 나아가 온 나라에 퍼지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가족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모든 데에 넓혀서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널리 펴나가면 세상을 보전하여 편안케 할 수 있지만, 은혜를 널리 펴나가지 않으면 자기 처자조차 보전하여 편안케 할 수 없습니다.

옛 성현들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은 별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는 바를 미루어 잘 펴나갔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禽獸)에게까지 미치기에 충분한데도, 그 공적이 백성에게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저울(權)에 달아본 연후라야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물건이 다 그러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더욱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잘 헤아려보십시오. 그런데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군사와 신하들을 위태롭게 하고, (다른 나라) 제후들과 원한을 맺은 연후라야 마음이 통쾌하시겠습니까?”

曰: “挾太山以超北海, 語人曰 ‘我不能’, 是誠不能也; 爲長者折枝, 語人曰 ‘我不能’, 是不爲也, 非不能也. 故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 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言擧斯心加諸彼而已. 故推恩足以保四海, 不推恩無以保妻子. 古之人所以大過人者無他言, 善推其所爲而已矣.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權然後知輕重, 度然後知長短, 物皆然, 心爲甚, 王請度之. 抑王興甲兵, 危士臣, 搆怨於諸侯, 然後快於心與?” 왈: “협태산이초북해, 어인왈 ‘아불능’, 시성불능야; 위장자절지, 오인왈 ‘아불능’, 시불위야, 비불능야. 고왕지불왕, 비협태산이초북해지류야; 왕지불왕, 시절지지류야. 노어로이급인지로, 유어유이급인지유, 천하가운어장. ≪시≫운 ‘형우과처, 지우형제, 이어우가방’, 언거사심가제피이이. 고추은족이보사해, 불추은무이보처자. 고지인소이대과인자무타언, 선추기소위이이의. 금은족이급금수, 이공부지어백성자, 독하여? 권연후지경중, 도연후지장단, 물개연, 심위심, 왕청탁지. 억왕여갑병, 위사신, 구원어자후, 연후쾌어심여?”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어찌 그런 것을 통쾌하게 여기겠습니까? (나는) 장차 내가 크게 원하는 바를 추구할 뿐입니다.”

王曰: “否, 吾何快於是? 將以求吾所大欲也”  왕왈: “부, 오하쾌어시? 장이구오소대욕야”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크게 원하는 바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曰: “王之所大欲可得聞與?” 왈: “왕지소대욕가득문여?”

왕이 웃으면서 말하지 않았다.

王笑而不言. 왕소이불언.

(맹자가) 말했다.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이 입에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화려한 채색이 눈에 부족해서일까요, 아름다운 소리가 귀에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총애하는 신하들을 앞에서 마음껏 부리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그런 것들을 족히 공급해드릴 터이니, 왕께서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러시기야 하겠습니까?”

曰: “爲肥甘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 聲音不足聽於耳與, 便嬖不足使令於前與? 王之諸臣皆足以供之, 而王豈爲是哉?” 왈: “위비감부족어구여, 경난부족어제여? 억위채색부족시어목여, 성음부족청어이여, 편패부족사령어전여? 왕지제신개족이공지, 이왕기위시재?”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曰: “否! 吾不爲是也.” 왈: “부! 오불위시야.”

(맹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영토를 확장하고, 진 나라와 초 나라로 조공을 바치게 하여, 중국[中原]에서 맹주가 되고 사방의 이민족을 위무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나무에 기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3

曰: “然則王之所大欲可知已. 欲辟土地, 朝秦楚, 莅中國而撫四夷也. 以若所爲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왈: “연즉왕지소대욕가지이. 욕벽토지, 조진초, 리중국이무사이야. 이약소위구약소욕, 유연목이구어야.

왕이 말했다. “그렇게 심하다는 말입니까?”

王曰: “若是其甚與?” 왕왈: “약시기심여?”

(맹자가) 말했다. “아마도 그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한다 해도, 후에 재앙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마음과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후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曰: “殆有甚言!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 以若所爲求若所欲, 盡心力而爲之, 後必有災.” 왈: “태유심언! 연목구어, 수부득어, 무후재. 이약소위구약소욕, 진심력이위지, 후필유재.”


1. 제선왕(齊宣王)


양혜왕 상의 후반부로 오면서 대화의 상대가 제선왕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왕들로 바뀐다. 맹자가 양나라로 불리던 위나라를 떠나게 된 계기는 혜왕의 아들 양왕(襄王)이 변변치 못해서이다. 맹자는 양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볼 때 왕 같지 않고, 가까이 볼 때 두려워할 바가 없었다.” 더불어 논할 수준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곤 제나라 선왕을 만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때 제나라는 주나라 초기에 강태공이 하사받아 강씨가 대대로 다스리던 그 제나라가 아니었다. 대부 중의 하나인 전(田)씨가 권력을 빼앗아 전씨가 세습하는 나라가 되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로 유명한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의 이름도 전문(田文)이다. 초기 강씨가 지배하던 제나라를 강제(姜齊)라 하고, 전씨가 지배하던 제나라를 전제(田齊)라 한다. 이번 문장에서 만나는 제선왕의 이름은 전규(田嬀)이고 제 나라가 전제로 바뀐 후 4번째 왕이다.  

제선왕은 전국 칠웅 중의 한 나라인 제 나라를 이끌던 왕이다. 그의 아버지 제위왕(齊威王)은 많은 학자를 제나라로 모우고 등용해 마음껏 학문을 펼 수 있게 한 왕이었다. 그때 활약한 여러 학파들을 특별히 직하학파(稷下學派)라고 부른다. 제 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에 여러 성문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직문(稷門)이었고, 그 부근에 학자들에게 저택을 주어 살게 하면서 학문에 전념하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선왕(宣王)도 부친인 위왕을 따라 많은 학자들을 우대해 학문의 꽃을 피운 임금이었다. 사기(史記) ‘전완세가(田完世家)’에 잘 서술되어 있다. “선왕(宣王)은 문학(文學)하며 유세(遊說)하는 선비들을 좋아하여, 추연·순우곤·전병·접여·신도·환연 같은 학자 칠십육 인에게 나란히 집을 하사하고 상대부로 삼았고, 다스리는 데 부르지 않고 논의하고 토론하게 했다. 이리하여 직하의 학사(學士)들이 다시 번성하였고, 그 수가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맹자가 제 나라에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초빙된 것이고, 제선왕은 맹자를 객경(客卿)의 벼슬에 앉히고 그의 이야기에 오랜 기간 귀를 기울였다.


2. 패도(覇道)가 아닌 왕도(王道)를 말하자


제선공이 물어보는 두 제후, 제환공과 진문공은 춘추 시대의 대표적인 패자(覇者)이다. 힘을 잃은 주 왕실을 대신해서 제후국을 모으고 존왕양이를 맹세케 했던 실력자들로 부국강병의 상징이다. 공자에서 비롯한 유가는 이와 같은 패자의 패도를 다루지 않아 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맹자는 말한다. 대신 인의로 백성을 다스리는 왕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패도와 왕도의 구분이 다시 강조된다.

그리하여 맹자는 제선왕이 왕도를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선왕 자신의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찾도록 돕는다. 제사지내는 짐승을 애처로와 하는 당신의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어진 임금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당신 마음 속에 있는 선한 의지에 귀 기울여라, 그러면 백성을 인자하게 다스릴 수 있다. 맹자는 아주 가까운 근거를 통해 멋지게 왕도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왕도는 하지 않는 것일 뿐이지 하지 못할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역시 맹자는 대화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3. 연목구어(緣木求魚)


그 유명한 연목구어라는 말이 맹자에서 나온 것이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지도 않고 부국강병하기를 바라는 제선왕을 꾸짖는 비유이다.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나라 덕에, 나라님 덕에 행복한 사람들은 그냥 두어도 나라에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 본질을 그냥 두고 다른 나라를 이기는 싸움에 나서면 백성만 고통을 당하게 된다.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지만, 불행한 백성을 강국의 경쟁 속에 몰아넣는 것은 백성을 죽이는 엄청난 피해가 생긴다는 말이다. 백성의 행복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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