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16. 이루 하 離婁 下 8.28
문장 16.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다른 사람과 다른 까닭은 자신의 마음을 지킬 줄 알기 때문이다. 군자는 어질게 삶으로 마음을 지키고, 또 남을 배려함으로 마음을 보존한다. 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공경할 줄 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들의 공경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난폭하게 대한다고 치자. 군자라면 반드시 자기를 반성하여, 내가 틀림없이 어질지 못하거나 배려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할까? 헤아린다.
스스로 반성해 보았을 때, 그에게 어질게 대했고, 예를 지켰는데도, 그가 그대로 난폭하게 자신을 대한다면, 그때도 군자는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여, 아마 자신이 충심을 다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하여 충심을 다하여 인과 예로 대했는데도, 난폭한 행동이 그대로라면, 군자는 그를 정신 놓은 사람이요, 금수와 구별할 수 없는 자로 여긴다. 금수는 정성을 다해 대하거나 가르친다고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평생 해야 할 하나의 근심은 있어도 한때의 걱정은 없다.
그 하나의 근심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순임금도 사람이고, 나 역시 사람인데, 순임금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널리 전하여지고 있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근심할 만하다. 어떻게 근심해야 벗어날 수 있는가?
순임금과 같이 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군자라면 달리 걱정할 필요 없이, 인(仁)이 아니라면 하지 않고, 예(禮)가 아니라면 행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한때의 걱정이 있을지라도 군자라면 그것을 걱정으로 여기지 않는다.”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다른 사람과 다른 까닭은 자신의 마음을 보존할 줄 알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仁)을 지켜 마음을 보존하고, 또 예(禮)를 지켜 마음을 보존한다. 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예를 지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공경할 줄 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들의 공경을 받는다.
孟子曰: “君子所以異於人者, 以其存心也. 君子以仁存心, 以禮存心. 仁者愛人, 有禮者敬人. 愛人者, 人恒愛之; 敬人者, 人恒敬之. 맹자왈: 군자소이이어인자, 이기존심야. 군자이인존심, 이예존심. 인자애인, 유예자경인. 애인자, 인항애지; 경인자, 인항경지.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 그가 나에게 난폭한 행동으로 나를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자기를 반성하여, 내가 틀림없이 어질지 못하거나 예를 지키지 못했다고 여기고, 그가 어찌 그런 행동에 이르게 되었는가? 헤아린다.
有人於此, 其待我以橫逆, 則君子必自反也, 我必不仁也, 必無禮也, 此物奚宜至哉? 유인어차, 기대아이횡역, 즉군자필자반야, 아필불인야, 필무례야, 차물해의지재?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그에게 어질게 대했고, 예를 지켰는데도, 그의 난폭한 행동이 그대로라면, 군자는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여, 내가 반드시 충심을 다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다.
其自反而仁矣, 自反而有禮矣, 其橫逆由是也, 君子必自反也, 我必不忠. 기자반이인의, 자반이유예의, 기횡역유시야, 군자필자반야, 아필불충.
(그러나) 자신을 반성하여 충심을 다했는데도, 난폭한 행동이 그대로라면, 군자는 ‘그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 이와 같다면 금수(禽獸)와 어찌 구별할 수 있겠는가? 금수를 또 어찌 꾸짖을(難) 수 있겠는가?’ 한다.
自反而忠矣, 其橫逆由是也, 君子曰: ‘此亦妄人也已矣. 如此, 則與禽獸奚擇哉? 於禽獸又何難焉?’ 자반이충의, 기횡역유시야, 군자왈: 차역망인야이의. 여차, 즉여금수해택재? 어금수우하난언?
이런 까닭에 군자는 종신토록 할 근심은 있어도 한때의 걱정은 없다.
是故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 시고군자유종신지우, 무지조지환야.
만일 근심이 있다면 이러한 것이 있다. 순임금도 사람이고, 나 역시 사람인데, 순임금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가히 후세에 전하여지고 있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乃若所憂則有之: 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내약소우즉유지: 순인야, 아역인야, 순위법어천하, 가전어후세, 아유미면위향인야.
이것은 근심할 만하다. 어떻게 근심해야 하는가?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시즉가우야, 우지여하?
순인금과 같이 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군자라면 달리 걱정할 것이 없다(亡).
如舜而已矣. 若夫君子所患則亡矣. 여순이이의. 약부군자소환즉무(망이 아니라 무로 읽는다)의.
인(仁)이 아니라면 하지 않고, 예(禮)가 아니라면 행하지 않는다. 비록 한때의 걱정이 있을지라도 군자라면 그것을 걱정으로 여기지 않는다.”
非仁無爲也, 非禮無行也, 如有一朝之患, 則君子不患矣.” 비인무의야, 비예무행야, 여유일조지환, 즉군자환의.
군자에게 한 가지 걱정만이 있다. 인과 예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걱정 말이다. 돈이 많고 적은지, 명예가 높은지 낮은지, 권력을 가지는지 아닌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에게 험하게 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인과 예로 살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지 돌아본다. 몇 번이고 그렇게 자신을 돌아본다. 인과 예로 살아가는지가 유일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말로 인과 예를 다했는지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는데도 내게 험하게 구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봐도 된다. 인과 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까지 내밀라는 종교적 사랑과는 다른 유가의 현실성이 여기서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다. 내가 인과 예로 살아가는지 일생을 고민하고 성찰하는 삶, 그것이 군자의 삶이다. 그 정점에 순 임금이 있다. 인과 예의 삶으로 일관하다 보면 어느새 그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 유가가 말하는 아름다운 삶의 길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