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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May 24. 2016

새로운 곳에 새로운 내가 있다.

타고난 것이라고 죽을 때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대개의 선택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 가치관 안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예측하기도 결정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한계는 실제와는 달리, 내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의한 편견일 가능성이 크다. 100m 달리기 기록이 20초 후반인 여성이 식사 중인 식당에 불이 나서 10초만에 뛰어나오는 상황, 결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장녀가 되어간다.


조카가 이제 갓 세 살이 되었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귀엽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어찌나 생떼를 쓰는지 영락없는 막내딸이나 외동딸의 모습이다. 그런 조카에게도 동생이 생겼다. 엄마와 가족들에게 온전히 혼자 받던 사랑을 빼앗겨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있으면 얼른 달려가서 새 기저귀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벗긴 기저귀는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가~"하고 부르며 바라보는 눈빛은 적어도 10년 이상 차이 나는 큰 언니의 자상함이 묻어 있을 정도였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장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타고난 것이라고 죽을 때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대희형이 내성적이라고요? 대희형이요?”

 

사촌형이 하는 사업에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고 해서 아는 동생을 소개시켜 준 적이 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둘이당구를 한 게임 치면서 자연스럽게 내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나 친척들은 내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인 줄 알고 있다. 사실 그랬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얘기도 못하는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아들이고, 조카였다. 당연히 그런 성격의 나를 생각하고 있던 사촌형이 지금의 내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찢어진 스피커 때문에 수능에서 제 점수를 받지 못한 나는, 원하지 않던 대학에서의 학과생활이 재미없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만난 것이 ‘야간학교’라는 동아리였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청소년들이나 연세 많은 어르신들에게 대학생들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가르쳐주는 봉사단체였다. 학교 생활의 부족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야학에 그야말로 미쳐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에 위치한 야학이 뭐가 좋다고 제일 먼저 가서 청소를 하고, 먼저 도착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수업이 끝나도 밤 늦게까지, 정확히는 새벽까지 야학교사들과 ‘야학의 미래’라는 그럴 듯한 주제를 가지고 술자리를 했다. 1년의 교사 임기를 다 채우고도 1년을 더 했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도 휴가를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야학에 들러 후배들과 학생들을 만날 정도로 완전히 야학에 빠져있었다.

 

전역 후에도 야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다시 복학하기 전까지 틈만 나면 야학에 놀러갔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휴가 때마다 야학에 놀러갔다 하더라도, 후배들에게 고리타분한 예비역 선배는 여전히 어려웠었나보다. 의무적인 첫 인사 정도 빼고는 더 이상의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신입 교사에게도 먼저 말을 걸고, 되지도 않는 예비역 농담들을 던지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새 학기가 되면 다시 야학교사로 들어오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온몸의 털끝이 쭈뼛쭈뼛 설 정도로 어색한 것들이었지만, 다시 야학을 하기 위해서 내성적인 나를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제대로 빛을 발했는지, 어느 새 나는 내성적이란말로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야학 안에서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교사가 되어있었다.

 

다시 야학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기존 교사들과의 어색함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나만의 이유와 상황이 내성적이었던 손대희를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손대희로 바꾸어놓았다. 나 스스로도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대희형 덕분에 회사생활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나도 상황에 따라 적극적이고 외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의 내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같으면 소심하게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말 일도 조금씩 적극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내가 원래부터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라 생각할 만큼 새로운 나의 모습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회사 동호회 전체를 통합해서 운영하는가 하면, 연말마다 있는 장기자랑도 나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다. 소심했을 때의 소극적인 손대희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결과들이다.


새로운 곳에 새로운 내가 있다.


친구들은 내게 말을 잘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강사들과 있을 때의 나는 그저 평범한 강사일 뿐이다. 말 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 잘 하는 나의 장점은 특별할 것이 없다. 반대로, 너무도 평범해서 눈에 띄지도 않던 나의 것이 전혀 새로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손대희 강사는 스토리가 있어서 좋겠어."


다른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 겪기도 어려울 일들을 수 년 사이에 종합선물세트처럼 겪었던 나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그저 힘들었고 잊고 싶은 일들 그뿐이었다. 그런데 강사들에게는 그런 삶의 스토리가 부러웠었나보다. 실제로 강의를 시작하고 빠른 시간 안에 나의 강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삶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사 세계라는 낯선 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냥 묻어버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강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나의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이것이 낯선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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