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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Jul 15. 2016

선택권을 넘기지 말라.

책임이 있어야 성과도 내 것이 된다.

"팀장님,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오늘도 '나몰랑'은 '다알아' 팀장에게 물어본다.

 대규모의 공사장에 뿔뿔이 흩어져 일을 하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의사결정은 각 파트를 맡은 직원들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몰랑은 항상 하던 일을 멈추고서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다알아 팀장을 굳이 찾아내어 의사결정을 미룬다.


"이거 라인이 잘못 됐잖아?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현장소장의 불호령에, 나몰랑은 꿈뻑꿈뻑 눈만 껌뻑이며 다알아 팀장을 쳐다본다.

사실 나몰랑과 다알아는 나이차이만 조금 날 뿐이지 거의 동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다알아가 팀장이 된 이유는 나몰랑의 이와 같은 태도 때문이었다.


나몰랑은 항상 모든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미뤘다. 그 결정이 잘못됐을 경우의 피드백을 듣기 싫어서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깜빡 놓쳐서 공정이 잘 못되어 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경우에도 누군가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으면,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대로 진행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다알아 팀장이 자신보다 먼저 팀장이 되고, 연봉을 더 받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불만이었다. 또 그런 불만은 어김없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 떠넘기기로 화풀이라도 하듯 되풀이됐다.


"나몰랑씨, 이번 현장은 나몰랑씨가 소장으로 나가봐. 이번 일 제대로만 마무리 되면 성과급도 서운치 않게 챙겨 줄게."


그동안 다알아 팀장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을 생각하면 고민할 것도 없이 받아들이면 될 일을 나몰랑은 고민한다.


"그냥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돼요? 전 써포트 하겠습니다."


현장소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이 스스로에게는 버거운 모양이다. 결국 그 현장은 또 다알아 팀장이 맡게 되었고 나몰랑은 또 씩씩대며 그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유를 구속당하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면, 시민들은 그 '자유'를 굉장히 불편해 한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선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라는대로 하고, 말라면 말고, 시키는대로만 하면 됐던 구속된 사회가 오히려 그들에겐 더 익숙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한다.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를 지향하는 프로그램, TVN 삼시세끼 정선편은 제작진이 주인공인 이서진과 택연, 김광규에게 매 끼 식사메뉴를 정해준다. 요리 무지렁이인 그들에게는 제작진이 정해주는 모든 메뉴가 불만이다. 시장에서 그냥 사다 먹게 해달라, 우리가 알아서 해 먹겠다는 등의 불만을 표출하며 결국은 제작진이 시킨 메뉴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재밋거리이다.


최근 방영된 편에서는 제작진이 게스트도 없고 하니, 마음대로 먹고 싶은 메뉴를 선정해서 해 먹으라고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자율 선택권'을 주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쉽게 메뉴를 선택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다시 제작진에게 그냥 메뉴를 정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토록 '자율 선택권'을 외쳤건만, 막상 그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자 익숙하지 않은 권한은 그들을 멘붕의 상태로 몰고 간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고, 결정도 해 본 놈이 잘 한다.


익숙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기는 하지만, 막상 탈출할 순간이 와도 머뭇거리는 이유는 탈출해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고 결정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두렵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유를 찾는 것보다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유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지만, 동시에 그 결정에 따르는 권한과 성과도 본인에게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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