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학10년 17화

17. 드디어 미국에 가다.

by 레저왕

인턴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다른 곳을 미리 관광을 하고 싶었다. 우리와 같이 리한이라는 회사에 가게 된 전기과 인회와 함께 날짜를 맞춰서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던 중,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가장 싸서 뉴욕을 여행하기로 하였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여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모든 것이 새롭고 두근거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유하는 시간이 짧다고 도착하면 서둘러서 수속해라고 하였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경유를 하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받는데 줄이 너무나 길었다. 수속 끝나고 시간 늦을 것 같아 계속 뛰었지만 항공기에 탈 수 없단다. 비행기를 놓친 우리는 12시간 뒤 뉴욕으로 가는 항공권을 다시 예매하였고 남는 시간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으로 가는 법을 검색해서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도착해서 내렸다. 한참을 걷다 셀카를 찍으려 주머니를 뒤졌는데 폰이 없다. 버스에서 잠시 졸았는데 그때 폰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미국에 처음 오자마자 폰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폰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버스가 간 길을 쫓아 가보다가 포기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며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래 여긴 샌프란시스코야. 폰 잃어버린 것 때문에 주위를 못 보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한심한 짓은 할 수 없어.’


그 후부터는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서 비행기를 내렸는데 이때서야 일록이가 자기 지갑이 없단다.


한 명은 폰을 잃어버리고 한 명은 지갑을 잃어버리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또한 게스트하우스나 숙소에 대한 정보 없이 무작정 왔기에 한참 동안 헤매어만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보이는 한국 여행사에 들어가서 방을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숙소를 컨택해주었다. 방에 들어가 얼른 씻고 뉴욕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먼저 타임스퀘어를 갔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게 타임스퀘어 밖에 없었다. 사진도 몇 장 찍고 사람 구경 실컷 했다. 허기가 져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밥을 해결하고 밤에는 뉴욕에서 핫하다는 펍을 찾는다. 하지만 못 찾고 결국 한인식당에서 술 먹고 잠들었다.


첫날 과음을 한터인지라 11시 체크아웃 시간을 넘겨서 일어났다. 다행히 12시까지 체크아웃해달라고 하셨다.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이틀째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체력이 없어서 라운지에서 쉬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봐야지 하고 계획은 했지만 정보는 없다. 길을 무작정 걸었다. 돈을 뽑아야 되는데 은행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매고 돈이 안 뽑혀서 한참 서성이고 결국 자전거를 빌려서 여행을 시작했다. 지도를 보면서 헤매다 결국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걸로 뉴욕에서 이틀째날도 끝내고 뉴욕에서 애틀랜타로 이동한다. 애틀랜타에서 어번이란 도시까지 리무진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어번이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도시였다. 어번에 도착하자 우리를 담당하는 매니저가 인사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숙소와 출퇴근용 차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각방이 따로 있었고 화장실도 방마다 위치해 있었다. 거실만 셰어 하는 형태의 숙소였다. 헬스장은 로비 옆에 위치해 있었고 수영장도 딸려 있었다. 차 같은 경우에는 옵티마란 이름이란 차가 제공된다고 해서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K5의 미국 모델 이름이 옵티마였다. 모든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일주일 동안은 OJT기간이라고 하였다. 주말을 이용하여 애틀랜타에 구경을 갔다. 이케아도 가고 이것 저곳 구경도 하고 갈려고 은행 ATM기에 카드를 넣는데 돈이 인출이 안된다. 일록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아무것도 없고 인회카드는 뉴욕에서 탄 자전거 보증금으로 돈이 홀딩돼있어서 돈 인출이 안된다. 결국 세명 합쳐 달랑 11불에 차 기름도 없다. 일단 배가 고프니 가까운 패스트푸드점 가서 햄버거 세트 하나 시켜서 세 명이서 한입씩 먹었다. 그리고 직장 상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저희 숙소로 돌아가야 되는데 기름값이 없어서 못 가고 있어요..”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고 첫 주말 나름 잊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미국에서 맞는 첫 롱 홀리데이. 우리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웨스트를 가기로 하였다. 키웨스트는 미국의 최남단 도시라 날씨가 좋을 때는 쿠바가 보이는 곳이다.


금요일 저녁 늦게 각자 짐을 싸서 자동차에 짐을 실었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은 3시간씩 2번씩 하기로 하였다. 운전을 하다가 피곤하면 뒷좌석에 가서 눈을 붙이고 조수석으로 오는 로테이션으로 교대로 운전을 해야 했다. 내가 운전하는 시간은 새벽 한 시에서 네시 타임 가장 잠 오는 시간대였다. 잠을 이겨내고 운전을 끝냈다. 스페인어로 ‘꽃이 피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플로리다 주에 들어왔다.


아침이 밝았다. 아침식사도 먹고 주유도 하고 돈도 찾을 심상으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왔다. 돈을 찾고 크리스피에 들려서 도넛을 샀다. 플로리다에서 먹는 첫 식사는 도넛인 게다. 본래 섬이었던 키웨스트는 플로리다 반도에서 다리를 이어 육지화되었다. 마이애미에서부터 42개의 다리를 건넌다. 이 드라이브 구간은 오버시즈 하이웨이라 불리는데 죽기 전에 꼭 드라이브해야 되는 구간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 구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차 윈도로 보이는 바다와 정면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고 운전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자동차를 타고 있는 건지 배를 타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번에서부터는 총 18시간에 걸친 대장정 끝에 키웨스트에 도착했다. ‘Southernmost point’라고 표시된 글을 보고서야 여기가 진짜 미국의 땅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진을 좀 찍다가 해밍웨이가 자주 왔다던 레스토랑은 끝내 찾지 못하고는 그 근처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캐리비안 스택이라는 메뉴를 시켰다. 고기가 생각보다 연하고 달짝지른한 게 참 맛있다. 허기를 채우고 차에 올라탔다. 숙소는 마이애미에 있으므로 또다시 4시간가량 이동을 해야 한다. 차 안에서 총 22시간을 보내는 여행이다.


다음날 아침, 창가에 밝고 따스한 햇살이 드리운다. 오늘은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에서 한가로이 칠링을 하는 것이 플랜이라면 플랜이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비치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백사장이다. 썬베드를 빌려 누워 반나절을 보내었다. 해가 저물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집으로 가려니 아쉽다. 주차장에 가서 차 문을 열려고 하는데 차키를 들고 있던 인회가 키가 없어졌단다. 엎친데 덮친 격 비까지 온다. 비를 맞으며 가방을 다 뒤져보고 주머니를 뒤져봐도 없다.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 백사장까지 왔다.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혹시 차키 봤냐니깐 잠시만 기다려란다. 그러더니 웃으며 이게 혹시 너네 차키냐고 묻는다. 다행이다.


“고마워”


일상으로 돌아왔다. 홀리데이 동안 키웨스트를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회사 측은 마일리지를 제한하겠다고 하였다. 2만 마일리지를 넘어서 나오는 마일리지는 마일리지당 가격을 측정한다고 하였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일도 문제였다. 생산관리를 맡은 내가 하는 일은 생산자들의 불편 불만을 듣고 공정관리를 하고 생산량을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생산자가 없는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생산업무를 하루 종일 보고는 하였다.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일이 잦아져서 법인장을 찾아갔다.


“저는 이 회사에서 생산관리업무를 배우러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생산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산하는 것도 생산관리 업무의 하나야. 그 일이 하기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


마치 외국인 노동자가 된 기분이었다. 해외인턴쉽이란 명목으로 힘없는 인턴생을 막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 하지만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법인장과의 마찰을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 사수인 제프리에게 일을 받을 때보다 법인장이 시키는 일을 직접 할 때가 더 많았다. 어느 날부터는 불량 생산품을 파악하는 일을 시켰다. 새로 투입된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계속해서 불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는데 불량 생산품을 창고로 들고 가서 다시 역으로 분해해서 원재료를 얻는 일을 해야만 했다. 파악만 하는 일이라면 괜찮았지만 제품을 분해하는 것까지 하고 있으려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짜증을 낸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창고에 쌓인 불량품들을 다 분해하고 파악해야 되는 게 업무라면 조금이나마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망치로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을 부수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했다.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장에서 돌아다니는 바퀴를 주어 철로 된 빔에다 용접해 붙이고 그 위에다 제품 박스를 얹어서 밀면 쉽게 이동할 수 있게 시스템화 시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기톱을 가져다 놓고 제품 테두리를 미리 잘라서 망치로 두드리면 깔끔하게 부서질 수 있게 작업했다. 그리고 마지막 제품이 오픈되면 나오는 원재료들을 놔둘 박스들을 위치해 놔두었다. 톱질-레일-망치질-원재료 순서로 작업공정순서를 만들었다. 이 결과 첫날에는 4~5개 작업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던 작업들이 10개 20개까지도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턴이 끝나갈 무렵에는 법인장에게 아무런 문제 없이 깔끔하게 보고 할 수 있을뿐더러 일을 잘하는 이미지마저 보여줄 수 있었다.


keyword
이전 16화16.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능해, 미국 해외인턴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