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한 여행자 Sep 30. 2020

특별하지 않은 날은 없다

한 템포 쉬어 가는 해

 지난 여름 동안의 길고 길었던 장마를 보상해 주려는 듯 요즘 들어 날씨가 참 좋다. 미세먼지까지 없어 정말 말 그대로 반짝반짝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서 좋은 날씨를 누리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만 있으면 뭔가 날씨에게 죄를 짓는 기분까지 든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틈이 나면 괜스레 한 번씩 산책을 하러 나가게 되고, 주말이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남산이든 한강이든 아니면 집 앞에 있는 공원이라도 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일 년 중 이렇게 딱 기분 좋은 날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시기적으로는 계절 중에 제일 짧은 봄과 가을이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흐리거나 비가 오지 않아야 하고 그밖에 미세먼지 등도 없어야 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비로소 우리가 딱 기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날을 누릴 수 있다(그리고 그런 날을 온전히 누리려면 일하지 않는 주말이어야 한다). 아마도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누릴 수 있는 날이기에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날 좋은 주말이면 남산에 자주 가게 된다.




특히 여행의 8할은 날씨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을 가게 되면 날씨가 정말 중요하다. 같은 곳에 가더라도 어떤 날씨였는지에 따라 분위기나 풍경이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기분도 달라지게 되고 그곳에 대한 기억 역시 다르게 각인된다(그리고 무엇보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가부터 여행을 가기 전에 제일 많이 확인하는 것은 여행지의 날씨가 되었고,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 3일 정도만이라도 맑다고 나오면 안도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 중에 좋은 날이 너무 계속되어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날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그걸 누리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좀 버거워지는 시점이 온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게 되면 짧은 일정에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이 걷고 움직이게 되니 피로가 쉽게 누적된다. 그럴 때면 하루 정도는 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하게 된다. 아마도 타의에 의해서라도 조금 쉬고 싶은 인간의 모순된 심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소원대로 그렇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서 그 핑계로 하루 정도 호텔방에서 푹 쉬면 또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3박 4일 일정중 3일 동안 비가 왔던 2016년 8월의 몽생미셀. 흐린 날은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올해의 4분의 3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서 늘 일 년에 최소한 4차례(설 연휴, 여름휴가, 추석 연휴, 연말)는 항상 가곤 했던 해외여행도 못 가고, 지난여름의 긴장마로 인해 여름휴가 때 국내여행도 못 갔다. 처음에는 늘 가던 여행을 못 가게 된 사실이 무척 속상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로 인해 한 동안 손 놓고 있었던 독서도 다시 하게 되고, 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논문도 쓰게 되었고, 또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등 내면을 많이 채울 수 있었던 한편으로는 꼭 필요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올해는 이 지구도 나도 한 템포 쉬어 가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날이 좋은 날은 노을도 이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