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한 여행자 Feb 02. 2020

삶의 위안을 받게 되는 우연한 순간들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

지난 연말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달링하버(Darling Habor)에 가서 저녁을 먹고 선선한 바람이 좋아 달링하버 주위를 산책하면서 걸었다. 달링하버 주변에는 밤이 되면 버스킹 공연을 많이 해서 구경하면서 다니는 재미가 있다. 버스킹 공연을 보면서 걷던 중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는 곳에 다다랐다. 도대체 무슨 공연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가 해서 봤는데,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3m도 넘는 장대 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저글링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위험한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도전은 전기톱과 칼 두 자루로 하는 저글링이었다. 그 아저씨는 전기톱이 진짜 인 것을 구경꾼들에게 확인시켜주려는 듯이 저글링을 하기 전에 전기톱의 시동을 걸고 바닥에 갖다 대었고, 전기톱의 칼날이 바닥에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관중들은 숨죽인 채로 그 아저씨가 하는 전기톱 저글링을 보았고,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공연은 끝났다.


지금까지 버스킹 공연을 보면서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면서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LA에 있는 베니스 비치(Venice Beach)에서 유리조각을 바닥에 깔아놓고 걸어가는 거리공연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기톱 저글링을 어떻게 연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실수를 살짝만 해도 손목이 잘리거나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을 텐데, 그러한 공포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저글링을 할 수 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변호사의 업무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서는 의뢰인이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잃을 수도 있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게 되는 관계로 업무 수행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물론 사건이 잘 해결되었을 때는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끼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항상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 관계로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거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 받는 스트레스는 당사자 본인만큼은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매우 크다. 그렇게 8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그랬던지 돈을 좀 적게 벌더라도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스트레스가 보다 적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마침 작년에 시드니에 갔을 때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시기였다. 도대체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스트레스받으면서 해결해주려고 하고 있는 건지 그냥 다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조그만 실수만 해도 자기 손목이 잘릴 수도 있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저분의 삶에 비하면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 자신에게 닥친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다가도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래 저 사람에 비하면 내가 겪는 고통은 별게 아니지”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먼 이국 땅에서 우연히 본 버스킹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안을 받은 날이었다. 그분이 앞으로도 무사히 사고 없이 공연을 계속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


   

이전 02화 여행이 떠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