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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준 Dec 29. 2017

예술은 거짓말을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거짓말

예술은 거짓말을 한다


예술은 거짓말을 합니다. 

“예술은 거짓말이다”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죠. 


이 두 명제는 다릅니다. 


예술은 진짜입니다.

 

다만, 거짓말을 할 뿐이죠.

예컨대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문성준이 가짜인 것은 아닌 것처럼, 예술이 거짓말을 한다고 예술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거짓말 때문에 예술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술이 거짓말을 한다면, 예술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놓고 속이는 거라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Onement VI, Barnett Newman, 1953, 출처:www.sothebys.com


그런데 사실 굳이 이렇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바넷 뉴먼의 그림을 보죠. 바넷 뉴먼과 그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없다면, 보통은 이 작품을 보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하겠네’라고요. 


실제로 바넷 뉴먼이 작업 과정을 알게 되면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저 캔버스에 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칠한 뒤 떼는 게 전부거든요. 어렸을 때 많이 하던 장난이랑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이 500억이 넘는 가격(정확히는 43,800,000달러입니다. 비슷한 그림인데 더 비싼 그림도 있습니다)에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도 하겠네’라는 생각이 조금 격렬해집니다. 


뭐야 이건장난해이런 사기꾼들 같으니라고...” 

라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백남준 화백이 금의환향하여 국내에 돌아올 때 외쳤던(실제로 외치진 않았습니다) “예술은 고등 사기다”라는 말에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현대 예술을 볼 때면 항상 “사기”라는 말을 옵션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아니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입니다. 그는 오히려 이런 거짓말이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의 지배자로 만든 중요 요인이라고 봅니다. 

거짓말이 인류 발전의 기제였다니, 뭔가 아이러니하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유발 하라리, 출처:www.TED.com


아직 제대로 된 문명을 형성하지 못했던 시기에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는 무척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지금에야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지구의 모든 지역,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고 있지만, 혹은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 15,0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먹이사슬의 중간쯤에 위치했었습니다. 아마 침팬지만도 못한 위치였겠죠. 게다가 우리와 비슷한 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에 비교한다면, 뇌의 크기도 작고, 힘도 약했습니다. 


뭐랄까... 잘 하는 것도 없고, 힘도 없고, 어중간한... 

딱 저 같은 입장의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였습니다.  


그렇게 약한 호모 사피엔스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약한 존재가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무리 짓기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쪽수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처럼, 약한 존재가 강해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내 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집단을 이루는 법을 알았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무리 힘 좋다고 해봐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러 명이 뭉쳐 집단을 이룬 호모 사피엔스는 뭐든지 할 수 있었죠.


대표적으로는 전쟁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을 점유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에는 무척 많은 충돌이 있었는데, 개별적인 개체의 능력만 놓고 본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다른 능력이 있었죠. 앞서 언급한 무리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무리 힘이 세다지만, 네안데르탈인 한 명이 오면 사피엔스는 두 명이 가면 됩니다. 두 명으로 안 되면 세 명이 가면 되죠. 그럼 네안데르탈인이 두 명이 오면요? 사피엔스는 다섯 명, 여섯 명이 나서면 되는 겁니다. 간단한 도식이죠. 네안데르탈인 쪽에 제갈공명이나 사마의 같은 전략가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많은 쪽이 이기는 겁니다. 인해 전술입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죠. 

그럼 네안데르탈인도 뭉치면 되지 않느냐고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그게 안 됩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니죠. 인간 외에 어떤 종이든 뭉치면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쥐도 뭉치면 고양이보다 강해지죠. 물론 쥐가 뭉친다고 사피엔스를 능가하기는 힘들겠지만, 비슷한 종인 네안데르탈인도 뭉치면 호모 사피엔스를 능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심지어 침팬지나 고릴라도 그렇겠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한 다른 종은 그게 안 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종, 특히 개체의 크기가 큰 종은 무리를 이룰 수 있는 개체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죠. 


바로 신뢰입니다. 


무리를 이룬다는 것은 일가(一家)를 이룬다는 말이기도 한데, 여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신뢰”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한 팀을 이루기 힘든 것처럼,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를 이루려면 신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대항하지 않는다는 신뢰, 무리와 다른 가치관, 즉 “딴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이나 기타의 유인원들에게는 이런 신뢰를 쌓을 만한 도구가 없었던 겁니다. 그들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스킨십, 즉 접촉으로 인해 발생하는 친밀함뿐이었죠. 하지만 스킨십으로 쌓을 수 있는 친밀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백 명, 천 명을 모두 만나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개체의 수가 일정한 수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면, 그 무리에서는 자연히 주류에 반발하는 집단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반발 집단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우두머리가 바뀌거나 그 집단이 독립하여 떠나가게 됩니다.

이건 인간 사회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이죠. 작게는 학교 동아리에서, 크게는 기업까지 수시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그룹이 찢어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개인의 리더십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어떤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직의 비전이니 사명이니 하는 것이죠. 혹은 관료제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거짓말이 효과를 발휘하는 지점입니다. 


바로 비전과 시스템이죠. 


비전이나 시스템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죠. 우리에게는 이런 비전이나 시스템 같은 것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히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을 써 놓은 글자라든가, 혹은 글자를 모아 놓은 법전이나 정관 같은 것들이겠죠. 하지만, 법전이나 정관을 찢는다고 그 법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법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것도 법전이나 정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권력처럼 물리적인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작용은 하죠. 


사람들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힘을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가짜는 작용을 합니다. 이런 믿음이 가짜가 진짜를 움직이게 만들죠. 권력을 가진 자가 실제로 어마 무시하게 강한 힘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권력을 가졌다고 믿어 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그가 가진 힘이라기보다는 그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러면 이런 질문이 나오겠죠. 

그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시켜 실제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죠. 이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 사람의 명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 즉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므로 나를 움직일 수 있다고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믿어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의 하수인들이 “내가 이 사람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 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 믿음이 연쇄적으로 작용하여 그는 실제로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믿음의 연쇄가 물리적 실제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하게 축적되어 온 시스템이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 실제성을 띄는 것이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아이러니하게도 거짓말은 이처럼 실제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 찢어지려는 집단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거짓말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거짓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개별적인 존재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제 각각인 개체들에게 “우리가 뭉쳐서 네안데르탈인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어쩌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친하게 공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저런 거짓말이 탄생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됩니다. 거짓말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오직 “우리가 뭉쳐서 네안데르탈인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라는 거짓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는 겁니다. 


이게 현대식으로 바뀌면 사훈이나 가훈, 팀 구호, 혹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되는 것이죠. 예컨대 모 기업의 영업팀의 팀 구호가 “끝까지 간다”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있을 법한 구호입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팔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게 영업팀이니까요. 이때 이런 팀 구호를 조금 풀어서 쓴다면 이렇습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적인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닥치고 팔아라!라는 소리입니다. 이런 구호가 생기면 사람은 과감해집니다. 이제 목적은 하나가 됩니다. 무조건 파는 겁니다. 비전에 몸을 맡기는 것이죠. 이 비전은 사훈이 될 수도 있고, 종교적 신념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가문의 영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런 거짓말은 신뢰를 만듭니다.

“너도 호모 사피엔스야? 그럼 너도 나랑 같은 생각(네안데르탈인을 죽이자)을 하고 있겠구나?”

라는 착각에서 오는 신뢰죠. 


비슷한 예로는 종교가 있습니다. 아무리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동일한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는 비교적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공통의 거짓말(종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때의 거짓말은 만들어진 시스템으로써의 거짓말을 의미합니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겁니다. 해외여행이나 이민을 갔을 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면 빠르게 친해지고 상대방을 신뢰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거짓말은 이렇게 개체를 뭉치게 합니다. 그리고 뭉친 집단은 강해집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생태계의 왕좌를 차지한 것도 바로 이런 거짓말 덕분이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이제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새로운 마법의 단어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라는 단어죠. 


거짓말로 뭉친 존재들은 "우리"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거짓말 위에 놓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거짓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죠. 다르지만 같다는 착각, 완전히 빗나가 절대 마주칠 수 없지만, 손을 마주 잡고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거짓말. "우리"라는 것은 그러한 거짓말, 다른 의미로는 환상에 기대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이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추상적이면 추상적일수록 “우리”에 속하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백인 남성"이라고 구체화시켰을 때보다는 그저 "사람"이라고 추상화시켰을 때가 더 많은 다양성을 함축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집단의 구성원이 다양해질수록 거짓말은 추상화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거짓말은 견고해져야 하고, 진실은 희박해져야 하는 것이죠. 


사회나 기업이 크고 복잡해질수록 법이나 시스템이 견고해져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가장 그럴싸하게 하는 사람, 그리하여 남을 믿게 만드는 사람은 간혹 수 천 수 만 명의 힘을 모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예수라거나, 부처라거나, 혹은 독재자라거나 혁명가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렇게, 

"우리"는 거짓말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말도 “말”이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이지 않죠. 지금처럼 언어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도 그런데 초기 단계의 무척 제한된 언어를 사용했던 시기에는 더욱 심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언어가 적어서 더 오해가 적었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언어는 입에서 나오면 곧 사라져 버리는 창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만 거치더라도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 만들어져 버립니다. 


이러면 거짓말의 효과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게 되죠.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 내야 했습니다. 


거짓말을 지속적이고 변함없이 처음 그 모습 그대로 고정해야 했죠. 

거짓말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 

거짓말을 기록하기 위한 도구,

그래서 거짓말을 원래의 그 상태로 멀리멀리 퍼뜨리기 위한 도구,


바로 그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기호와 상징으로서의 이미지이죠.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이미지(약 40,000년 전), 출처: www.donsmaps.com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십자가 형태의 이미지(약 40,000년 전), 출처: www.donsma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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