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에서 가족이 생겼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웃음 한 장, 우리가 가족으로 오해받던 순간.

by 나들레



빠이 여행 3일 차,

나는 내가 좋아하는 요거트 가게에

앉아 오늘은 뭘 하며 재밌게

보낼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숙소 사장님이 "오늘 뭐 하세요?" 하고 먼저 물어봐 주셨다. 별다른 계획이 없던 나는 망설임 없이 그들의 오후 일정에 합류했다.


나는 또다시 숙소 사장님 부부의 차에 올라탔다. 사장님이 무어라 설명해 주셨지만, 내게 선명하게 꽂힌 단어는 '분위기 좋은 하우스' 뿐이었다. 나는 그 한마디만 믿고 그저 따라나선 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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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 나타난 곳은 '스위트 홈 리조트'라는, 처음 보는 방갈로 숙소였다. 차에서 내린 뒤에야 비로소 그곳이 사장님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영어가 서툰 친구를 위해, 사장님이 잠시 숙소 일손을 보태러 온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정한 이유를 듣는 순간, 그들의 따뜻한 우정 사이에 나는 잠시 이방인처럼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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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빠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색빛 목조 건물과 푸른 자연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방갈로 스타일이었다. 작은 연못과 나이테가 선명한 나무 테이블, 옛 시골집에 볼 법한 우물, 그리고 캠프파이어 공간까지. 쉴 틈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방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지루할 틈 없는 정겨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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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잠시 동행했을 뿐인데,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대접을 받았다. 리조트 사장님께서 손수 차려주신 간식이었다. 이미 국수와 요거트로 배가 불렀지만, 보기만 해도 신선한 과일과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내어주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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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난생처음 맛본 '파인애플 말린 과자'는 그야말로 별미였다. 말린 망고의 달고 신 맛과 달리,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배부른 것도 잊고 계속 손이 갔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중 꼭 사 먹으려고 사진까지 찍어뒀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다음 여행길에서는, 그 녀석과 꼭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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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담소가 오가던 중, 나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곳 리조트의 여사장님은 이혼 후로 홀로 숙소를 꾸려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숙소 사장님이 덧붙였다. 모든 태국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게을러서 여자들이 더 부지런하게 일해야 한다고. 집안일이라도 도우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아, 태국 역시 이혼율이 높다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불편한 속사정을 다 듣고 나니,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즐거운 관광객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본 현지인이 된 것만 같았다.


...




묵직해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잠시 짬을 내어 숙소 여자 사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던 유쾌한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녀가 문득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요즘 사진 찍을 때 '김치'나 '브이' 말고 어떤 걸 해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최근에 유행했던 '볼 하트'를 알려주었다. 어색하면서도 금세 따라 하는 그녀의 모습에, 평소 사진을 잘 안 찍는 나도 덩달아 볼 하트를 하며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숙소 사장님 부부와 리조트 사장님, 나까지 넷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을 확인하고 우리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가, 그 누구보다 다정한 가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가족사진'을 보며 터트렸던 우리의 웃음은 숙소 여자 사장님이 나중에 들려준 이야기로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날 리조트를 찾아온 다른 손님들이 우리를 보고 "가족이에요?"라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리조트 사장님), 엄마/아빠(=숙소 사장님 부부), 나(=딸) 이렇게 오해했다고. 외국인의 눈에도 우리는 영락없는 한 가족이었나 보다.


지금도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저 우연히 만난 타인들이었을 뿐인데, 하지만 그 사진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웃음만이 아니었다.



한 가족처럼 나란히 서서 웃었던
그날 오후의 햇살이, 사진 너머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비춰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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