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새 가전을 갖고 싶었던 거지

1층에서 겨울나기(2/3)

     세탁기 급수관이 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간 쌓아온 자취 경력이 영(0)으로 초기화되는 느낌이었다.

헤어드라이기를 수도꼭지에 갖다 대며 생각했다.

'정말 이러다 겨울 마스터가 되겠군.'

    그 일이 있곤 더 이상 급수관을 방치하지 않는다. 세탁기를 다 쓰고 나면 급수 수도꼭지를 잠그고, 급수관을 세탁기와 수도꼭지에서 분리시켜 관에 고인 물을 다 빼낸다. 세탁기를 쓸 때만 급수관에 연결시키고 물을 트는 셈이다.

     급수관만 어는 것이 아니다. 배수관이 얼기도 한다. 이럴 땐 제조사에서 시키는 대로, 좌측하단의 미니호스를 통해 물을 빼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젖은 옷감이다.

세탁기 밖 세상이 어지간히 추워야지. 더군다나 온수에 담겨 있던 아이들은 누구보다 빨리 열을 뺏긴다.

물 먹어 엄청 무거워진 그것들을 화장실로 낑낑대며 들고 온다. 더운물을 틀어놓고 옷 무덤을 발로 빨아야 한다.

그리곤 손으로 눌러 물기를 짜낸다. 그래도, 건조기가 제대로 작동할 정도로 탈수되진 않는다.

별 수 없이 건조대를 가져와 거실에 펼쳐둔다.

'오늘은 가습기 안 틀어도 되겠어. 개이득'

드럼통에 고인 물은 적당히 따뜻한 물을 천천히 부어가며 배수관 길목을 녹여야 한다.

문을 닫아두면 미니호스로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배수관이 얼어 작동을 멈춘 세탁기. 물에 젖은 옷들을 꺼내놓고 사진을 찍었다. 후훗

사고 수습을 끝낸 내 손은 불쌍할 정도로 건조해졌다. 급기야 갈라져 피가 고이기도 했다.

'1층 베란다가 이렇게 추울 일인가'
꼭대기 자취방 살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러곤 생각해 보았다.

'휴... 난 언제부터 내 집이 궁해졌을까.'

     '내 집이 있어야겠다'라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오피스텔의 세탁기 트러블이었다.

내가 입주하기 전부터 상태가 좋진 않았다. 당최 무엇을 넣고 빨았을지, 세탁조 청소는 해왔을지 묻는 것조차 사치스러웠다.

2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세탁기가 드디어 파업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고, 겨우 눌러놓으면 5시간 동안 돌아가기도 했다.

임대인에게 세탁기 교체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다음에'였다.

처음으로 세입자로서 분노를 느꼈다. 그 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내 가전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됐다.

그랬다. 나는 제대로 작동하는 가전을 쓰고 싶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새로운 난전을 치르고 있는 지금을 격려하고 싶어졌다.

'그때보단 나으니까.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