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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Mar 23. 2023

1층은 로열스럽지 않아

1층에서 겨울나기(1/3)

     집을 길게 비웠다가 오랜만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반가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바닥에 마음이 다. 1층이라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구축 아파트의 지하 1층은 텅 빈 설비실이다.

막상 중간층에 살 땐, 로열층이 왜 로열층인지, 무엇이 '로열스러운지' 몰랐다.


     저층과 고층은 중간층에 비해 온도 변화의 폭이 크다.

중간층은 아래윗집에 사람이 산다. 그렇다 보니, 직접 방을 하지 않아도 1층에 비해 덜 춥다.


거실만 추우면 그나마 다행이다. 화장실 바닥도 춥다. 다행히 환풍기를 온풍모드로 해두면, 공기는 금세 따뜻해진다. 하지만 바닥은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 어서 온수를 틀어 바닥을 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손님방은 잘 쓸 일이 없어 가스관을 잠궈둔다. 그러다 아빠가 오신 날, 오랜만에 난방을 돌려서 그런지, 다른 방보다 한참 늦게 데워졌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 아빠에게 볼멘소리를 들었다. 온수매트는 40도인데 아빠 코에 스치는 냉기는 18도도 되지 않았을 거다. 죄송해라....

그날 이후로 손님이 오는 날은 이틀 전에 미리 데워놓는다.


1층 집은 서향 창가가 가장 따뜻하다.

12월 어느 날, 한파특보가 내려졌다. 비장한 마음으로 다이소에 갔다.

실탄을 모으는 병사의 마음으로 문풍지와 뽁뽁이를 샀다. 

'와. 요새는 다양하게 참 잘 나오네.'


그러다 베란다에 방치된 고무나무와 몬스테라를 발견했다.

'어이 식집사 양반. 자기 춥다고 우리 까먹기 있어?'

거실아이들을 허겁지겁 옮겼다.

이틀 정도는 달라진 온도에 적응하도록 두었고, 삼일 째 되던 날물을 주었다. 일주일 동안 아이들은 잎을 무지하게 떨궈냈다. 하엽과 죽은 가지를 잘라주었다.


결국 이 두 장 남았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걸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가락으로는 처리방법을 검색해 보면서, 마음으로는 소생의 기회가 오길 바랐다.

'내가 또 죽인 건가...'

축처진 입꼬리를 하며, 아이들을 서향 창가로 데려.


그런지 사나흘.

미세하게 보이던 연둣빛 점들이 까만 나뭇가지에서 번 시작했다.

서서히 웅크린 잎의 모양을 하고 올라왔다.

'아직 살아있었어... 대박'

성의 없는 식집사에게 간택당해 이 집으로 온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버텨준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했다.

이 집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무가 다시 피워낸 여린 새 잎을 본다.

'나도 이 집에 뿌리내린 사람이겠구나.'

흔들리지 말고 적응하자고 마음먹었던 순간이었다.


귀한 새 잎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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