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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Mar 23. 2023

허니문이 끝나고

집을 샀다(2/2)

     내 집과의 허니문 기간은 10개월이었다.

달콤하고 평화로웠다.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종류의 안정감과 충족감이었다.

골룸처럼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 깎다가, 너무 행복해서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와 씨 진짜 행복하다.'


하지만 한계효용이란 건 조금씩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여전히 좋지만 예전만큼 폭발적으로 행복한 느낌은 사라졌다.

그러다가 겨울이 왔다. 1층의 겨울은 살벌했다.

'내 사주가 춥다더니,
집을 제대로 고르긴 했네.'

그렇게 절반의 정신승리를 거두며, 2022년 끝자락을 보냈다.


우리 집은 30년 된 20평대 구축 아파트이다.

   

우리 집은 동향의 1층이다. 그래서 다른 집보다 여름엔 덜 덥고, 겨울엔 더 춥다.

지은 지 오래된 판상형 아파트라, 모든 동이 앞동뷰. 그래서 고층으로 올라갈 바에야, 나무와 하늘이 동시에 보이는 1층을 선택했다.


내가 이곳에 점수를 준 부분은 이러했다.


하천이 가깝다. 원할 때마다 언제든 걷고 뛸 수 있는 차 없는 길이 필요했다. 이곳은 계절감에 푹 빠져 무작정 걷기 좋은 하천이 1분 거리에 있다.


출퇴근 지하철 시간이 짧다. 사무실까지 지하철로 20분이 걸린다. 신축이지만 회사와 거리가 먼 아파트보다, 구축이라도 회사와 가까운 아파트가 좋았다. 어차피 인테리어는 새로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기가 수월하다. 아파트 단지를 1분만 벗어나면 브랜드 마트가 지상에 존재한다. 새벽배송은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가의 고된 새벽 노동을 값싸게 부리는 것 같다. 이런 별난 나에겐 자율적이고 쓰레기도 적은 오프라인 매장이 편하다.


공공인프라가 가깝다. 체육센터와 도서관은 1km, 대학병원은 3km 내에 있다. 재산세를 내는 주민이니, 지역사회의 혜택은 최대한 누리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내가 잘 정비된 동네에 살고 있구나'라는 그 안도감이 있다.  


하천 길


체육 센터



우선순위에서 뷰를 포기하고, 주변 시설 편의성과 자연을 선택했다.

로열층을 포기하고 투입자금을 절약했다.

살아보니, 집이란 건 장점과 단점이 극명했다.

'좋기만 한 건 세상에 없나 보다.'


허니문이 끝나니, 이제야 내 집의 진짜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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