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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맹드 Oct 29. 2024

2. 직진남은 오랜만이라

어리석은 결혼은 하기 싫었다.

만나기로 한 고깃집에 미리 앉아있었다.


이윽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우와... 덩치보소...'


테이블로 걸어오는 그를 지켜보았다.


'사람의 배가 저렇게 많이 나올 수가 있나? 임신한 게 아닌 이상?'


놀란 얼굴을 거두고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가 내 앞에 앉았다.

높은 고깃집 테이블 덕에 그의 배가 가려졌다.

만약 배가 계속 보였다면 신기한 듯 자꾸 훔쳐보았을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제가 골라드릴까요?"


과한 친절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듯한 43살의 남자였다.

하지만, 행동 전에 꼭 나에게 물어보았고,

알아서 결정해도 되는 것도

나에게 꼭 의사를 물어보았다.

생긴건 둥글둥글한데 세심하다고 할까.


식당 직원이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칙칙 소리가 났다.

우리의 대화도 잘 익어갔다.


충분히 먹고, 계산대로 갔을 때 식당주인은

"이걸 두분이서 다 드신 거예요?"라고 놀란 듯 물었다.

그는 "아유~ 이 정도 충분히 먹죠~ 하하 잘 먹었습니다~"라고 넉살 좋게 받아쳤다.


그는 뱃살만큼이나 탄력 좋은 성격을 가진 듯했다.

뾰족함이 없는 사람 같았다.


.


카페테라스에 가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깊어진 봄밤 하늘에 쌀랑한 바람이 이따금 불었는데

그는 "추우시죠? 무릎담요 가지고 올까요?"

하더니 내 손에 쥐어주곤, 옆에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자기소개서에 나올 이야기까진 아닌데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

가령, 해군 시험에서 서울권 대학생들을 다 제치고 1등을 거머쥐었다든가,

대학시절 농구 전국대회에서 준우승까지 했다는 것.


'내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3년 전 만났던 어느 중견 건설사 장남은

상고 출신 엄마를 오랫동안 무시해 온 아빠를 경멸했고,

명문대 출신 변호사는 '화환 받지 않습니다' 청첩장을 준 고교동기시기질투했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내밀한 어두움이나 결핍 같은 것들을

끝없이 들어주면서,

나는 들의 '잘남'에 질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앞의 이 남자는

제대한 지 20년 되었고, 졸업한 지 20년 된 이야기인데도

그것들을 실감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나는 '선함'을 읽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대단한 업적 이런 게 아니라,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어릴 적 내 마음속  같은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구나.'


그가 나에게 특별해지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4시간 정도가 지나고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집보다 1km 떨어진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전까지는

나를 좀 더 숨기고 그를 더 관찰하고 싶었.


한 시간 뒤,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 사람 냄비인가?
설레발은...'


40살의 나는, 기대감보다는 의심에 휩싸였다.

그의 톡은 그를 더 길게 관찰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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